[기고]지방시대, 지역특화산업의 경쟁력

문영백 경북테크노파크 지역특화사업추진단장
문영백 경북테크노파크 지역특화사업추진단장

지난 3월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5차 국가균형발전 5개년 종합계획’ 수립에 착수했다. 현 정부의 가장 시급한 어젠다인 ‘지역간 불균형 해소’와 ‘지방소멸’ 대책 마련을 위해서다. 여기엔 공정·혁신·자율을 기반으로 ‘어디 살든 균등한 기회를 누리는 지방시대’로 만들겠다는 계획이 포함돼 있다.

새로운 지방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일자리, 교육, 문화 등 다방면에 특화전략이 필요하다. 그가운데 하나는 ‘산업’ 영역에서 지역 주도형 ‘특화산업’을 육성하는 것이다.

지역특화산업육성사업은 중소벤처기업부가 지역균형발전 및 지역경제활성화를 위해 비수도권을 대상으로 지역 기반 특화산업에 대해 R&D(연구개발)와 비R&D(사업화지원)로 구분해 연간 1900억원 규모로 추진되는 중소기업육성정책이다. 지역 테크노파크(TP)와 지역특화센터가 주도하는 이 사업을 통해 최근 5년간 2만7000개 지역중소기업 지원, 1만4000명 신규 고용창출 등 지역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 왔다. 지역 경쟁력 원천인 지역특화산업을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좀 더 경쟁력 있게 지역에 뿌리내리게 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지역특화산업 선정에 있어 산업의 상대적인 지역특화 정도를 나타내는 지역별 입지계수(LQ)에 좀 더 주목해 보자. 지역특화산업의 열매를 얻기 위해 지역에 어떤 종자가 적합한 지 먼저 알아야 한다. 특정 지역의 특정 산업이 전국 평균에 비해 얼마나 강하게 입주·분포하고 있는 가에 따라 그 지역 산업 경쟁강도는 달라진다. 자연생태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특정 동물이나 식물의 개체가 많이 분포한 지역에 건전한 생태계가 발달돼 생태계 보전율이 높듯이 동종의 기술집적도가 높은 기업들이 많은 곳에 특정 산업의 전후방 가치사슬이 견고해 지역특화산업으로 뿌리 내리기가 쉬워진다.

경영학의 대가 마이클 포터 교수가 말하는 ‘경쟁전략’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의 경쟁론의 핵심은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다. 경쟁력이 없는 것은 버려야 한다는 말이다. 트레이드오프(trade-off) 즉, 한쪽을 선택하면 한쪽은 포기해야 한다. 4차산업과 관련된 모든 산업을 지방정부에서 너나없이 앞장서 하겠다는 것은 무리다. 제대로 된 경쟁우위를 가진 지역 ‘특화산업’ 발굴 자체는 지역특화산업육성에 절반의 성공을 의미한다.

둘째, 규제 해소를 통한 앵커기업 유치로 기업의 미래가치 창출역량을 극대화하자.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새로운 수종을 심어야 하는 이차전지, 로봇, 도심항공(UAM) 등 미래 신산업 분야에는 규제 요소가 산재해 있다. 지자체와 TP간 협력을 통해 미래가치 창출 역량이 우수한 앵커기업의 규제해소 방안을 마련하고, 이들 기업을 유치해 새로운 산업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다.

중소벤처기업부의 규제자유특구 수범사례로 선정된 ‘배터리리사이클링 규제자유특구’ 기업인 이차전지소재기업 ‘A사’의 포항 유치는 영일만산단과 포항블루밸리산단에 생기를 불어 넣으며, 철강도시 포항을 이차전지 배터리 도시로 성장시켰다.

특정 지역에 핵심기업 유치는 관련 산업혁신, 고용창출, 세수확대 등 이른바 눈 위를 굴러가면서 커지는 눈덩이 효과로 이어진다. 균형위에서 향후 역점적으로 추진하려는 ‘기회발전특구’ 역시, 지방이전 수도권 기업들에게 다양한 세제와 규제 혜택을 제공하고 지역특화기업으로 성장시켜 나가는 제도로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이 오면 산업도 온다.

셋째, 가속화되는 지역특화산업 R&D 인력난 해소를 위해 지역기업 맞춤형 인재양성-취업-정주 등을 고려한 새로운 접근 방식의 핵심인재 공급 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지역특화산업육성에 R&D는 경험이 풍부한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문제는 우수 인재는 채용이 안되고 오히려 경험많은 연구인력은 유출이 가속화되는 악순환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핵심 연구인력의 유출을 방지하고 지역 정착형 R&D인력 공급을 위해 대구경북에서 시행한 혁신인재양성사업(HUSTAR)은 나름 지역특화산업 맞춤형 인재 양성에 기여했다. 하지만 일부 특정기업에만 인재가 몰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맥락에서 이제는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국가에서 전략적으로 해외 인력 유치 및 매칭을 위한 접근도 시도해야 할 때다. 지난해 법무부가 신설한 ‘지역특화형 비자’는 외국인에게는 국내 정착을, 지역 기업에는 우수인재를 확보해 줄 수 있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사업도 연구인력 공급에 좀 더 속도를 내야 한다. 미래차, ABB, 메타버스 등은 최근 대구경북 지역에서 먹거리 산업으로 선정한 산업들이다. 지역에 인재가 없으면 이런 산업도 없다.

‘지방소멸’이라는 시계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 청년인재 유출은 지역의 산업, 교육, 문화 등 전 영역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도 그 중심에는 지역을 든든히 지키는 ‘지역특화산업’이라는 뿌리가 있다. 지방소멸 시대가 아니라 진정한 지방시대를 선도하고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차별화된 지역특화산업육성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절실하다. 지역마다 눈에 보이는 좋은 그림만 찾을 것이 아니라 지역을 가장 잘 알고, 철저하게 지역의 수요를 반영하는 지역특화산업육성이 빛을 발할 때다. 위기 때 항상 구원투수가 있다. 지역 TP 등 지역혁신기관들이 지역특화기업들과 ‘스크럼(scrum)’을 짜 함께 나아갈 때 지역은 스스로 고유한 특성을 발현하고 ‘어디에 살든 균등한 기회를 누리는 경쟁력 있는 지방시대’를 이끌어 갈 것이다.

문영백 경북테크노파크 지역특화사업추진단장 myb87@gbtp.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