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성장을 위해 투자유치를 하다 보니 대표인 제 지분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습니다. 지배력과 의결권이 부족해 다음 투자유치가 고민이 됩니다. 벤처캐피털(VC)과 협상에서도 지지부진한 경우가 생깁니다.” (A사 대표)
위와 같은 사례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비상장 벤처기업에 복수의결권 주식을 부여하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이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이달 9일에는 국무회의 의결, 오는 11월 17일 본격 시행을 앞뒀다. 2017년 벤처기업협회를 중심으로 혁신벤처단체협의회가 복수의결권 주식제도를 건의한 지 약 7년만의 일이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3만5000개 벤처기업과 83만 종사자가 간절히 바라던 일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다. 제도 마련에 불철주야 힘을 써준 국회,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실무진의 노고에 먼저 깊은 감사를 드린다.
복수의결권 주식제도는 벤처생태계 활성화와 벤처기업 성장을 위해서 꼭 필요한 제도다. 벤처기업이 우수한 성과로 지속 투자가 이어지면 창업자의 지분율이 희석돼 경영권을 지켜내기 어렵고, 투자를 못 받으면 성장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딜레마에 빠져있는 벤처기업의 숨통을 틔워주며 우리나라도 유니콘 기업 상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미국의 테슬라 같은 혁신 기업을 육성하려면 대규모 자금 투입이 필요하다. 국내에선 창업자 지분희석 우려 등으로 대규모 투자가 어려워 성장의 한계가 분명 존재했다. 복수의결권은 기업성장에 크게 기여할 제도임이 분명하다.
법안은 여러 가정과 우려에 가로막혀 긴 시간을 보냈다. 이제 하위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현장 목소리를 반영하고 벤처기업이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후속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울러 실증적으로 복수의결권 주식제도의 유용성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전기를 제공해주었기에 우리나라 회사법에 큰 획을 긋는 입법적 쾌거라 판단된다.
입법 당시 일부 국회의원과 시민단체가 우려의 목소리를 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법안에는 오남용 방지를 위한 각종 안전장치를 마련해뒀다. 비상장 벤처기업 창업주로 제한하고 상속·양도·이사사임·공시대상기업집단 편입 및 상장시 보통주로 전환하게 돼 있다. 또한, 발행주식 총수의 75%가 동의해야 발행이 가능하고 복수의결권 행사를 제한해 안전하게 경영권을 유지하면서도 대규모 투자를 유치해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혁신 제도를 국내에 도입한 것에 다시 한 번 그 의미를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창업보육이라는 말이 있듯 벤처기업은 신생아와 같이 세심히 들여다보고 관심을 가져줘야 한다. 발 앞에 놓인 걸림돌을 빠르게 제거해줘야 혁신적으로 성장해 벤처 1000억 기업, 유니콘 기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규제를 해소하기 위한 기간이 너무 길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제20대 국회 입법활동 분석’에 따르면 20대 전체 법안 평균 처리기간은 577.2일이다. 19대 국회는 517일이었고, 18대는 485.9일이었으니 시간이 갈수록 더 길어지는 셈이다.
신산업 분야는 규제 개혁에 난항을 겪으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혁신과 성장을 위해선 급변하는 상황에 맞게 신속한 변화가 필요하나 기존 규제로 인해 늦춰지고 있다. 고초를 겪는 상황에서 8일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글로벌 혁신 특구 조성방안’은 벤처업계에 매우 환영할 일이다. 기존 규제에 갇혀 뒤쳐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전면적 네거티브 규제 도입은 벤처기업 발에 달려있던 족쇄를 풀어준 것이라 생각된다.
반대로 정부의 규제개혁 의지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존 직역단체는 신산업 분야를 규제로 억누르려 하고 있다. 변호사 중개 플랫폼은 합법서비스임을 여러차례 인정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변호사단체는 이를 제재하기 위해 규정까지 개정해가며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비대면 진료도 코로나 위기단계 하향조정으로 관련 업체는 당장 플랫폼 자체에 대한 존폐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 뿐만 아니라 미용의료정보플랫폼은 환자 유인·알선 위험이 있다며 의료법 위반으로 고발당했고, 세무대행플랫폼도 무자격 세무대리를 사유로 고발 당해 검찰조사가 진행 중이다.
정부는 더 이상 기득권세력의 눈치를 보지 말고 할 일을 해야 한다. 이익집단이 법을 뛰어넘는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게 철저히 감독해야 한다. 기존 규제가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신산업 태동을 가로막고 있다면, 새로운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개혁하고 중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새롭게 등장하는 산업에 대해 정부 규제나 법이 빠르게 따라가야 갈등을 최소화 할 수 있다.
혁신을 앞세운 신산업과 기존 산업 간 갈등은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것이다. 정부·업계 모두 혁신 성장에 필요한 여건을 마련하고 갈등 해소와 지원방안 강화라는 두 가지 해결책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는 추진책이 필요하다. 아직까지 우리나라가 가보지 못했던 세계를 선도하는 벤처기업의 탄생을 위해선 더 많은 규제들을 바꿔나가야 한다.
올바른 규제는 많은 사람에게 이득이 되도록 제도 안에서 기업이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다. 시대에 맞지 않는 규제는 기업과 국민에 해로 다가온다. 네거티브 규제를 통해 사업을 허용하고, 사업화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는 차차 보완하면 혁신성장과 아울러 규제체계도 재정립해 만들 수 있다. 기존의 비합리적 규제가 벤처기업의 혁신활동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속도감 있는 규제혁신에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추진되길 기대해 본다.
〈필자〉성상엽 벤처기업협회장은 1972년생으로 대구 달성고, 연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앤더슨컨설팅을 다니다 2004년 위성통신 안테나·솔루션 전문 기업인 인텔리안테크놀로지스를 창업, 2016년 코스닥에 상장했다. 2018년 전파방송기술대상 대통령 표창, 2020년 무역의날 장관 표창, 지난해엔 한국거래소 코스닥 라이징스타 선정, 광대역 국제위성통신 인증, 1억불 수출 탑을 수상했다. 2016년부터 벤처기업협회 부회장, 2020년 11월부터는 수석부회장을 역임하며 국가 경제 활성화와 벤처생태계 발전에 힘써왔다.
벤처기업협회 회장(인텔리안테크놀로지스 대표) 성상엽 eric.sung@kov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