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사업은 주력사업과 부수사업으로 구성된다. 경영은 주력사업의 견고한 성장이 먼저이고, 부수사업은 성장성과 경쟁력을 기준으로 주력사업으로 편입하거나 정리한다.
◇주력사업을 등한시한 KT
KT 사업은 그간 많이 변해 왔다. 콘텐츠, 부동산, 커머스 등 여러 이종 사업이 망라돼, 어느새 50여 계열사로 불어났다. 어지간한 재벌보다 문어발식이다. 사업간 구성도 뒤엉켜, 무엇이 주력사업이고 무엇이 부수사업인지 혼란스럽다. 한때 세계 최고 기업이었지만, 주력사업을 뒤로한 채 금융·미디어 등 본업과 무관한 부수사업으로 몸집을 불리다 몰락한 GE의 망령이 KT에서 보이는 듯하다.
과거 KT 주력사업은 기간통신망과 기간통신서비스 구축, ICT산업 발전을 위한 ICT인프라 확립, 그리고 ICT선단의 선두함(先頭艦)으로서 ICT생태계 동반성장 주도의 세 가지였다. 한국이 ICT산업에서 초고속 성장한 바탕에는 주력사업을 굳건히 수행한 KT가 있었다. KT가 초고속 ICT인프라를 만들었고, 그 위에서 ICT산업이 뛰놀았다. ICT생태계가 동반성장했고, 굴지의 인터넷 기업도 생겨났다. 이는 다시 KT의 성장으로 선순환됐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KT는 주력사업을 등한시하기 시작했다. 당장의 수익성 저하를 만회한다는 명분이었다. 주력사업을 강화하는 투자로 미래성장을 추구하는 기본에 충실한 경영은 뒤로한 채, 경영자들은 눈앞의 재무제표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이제 성장성 정체를 맞이한 암울한 모습의 KT로 나타나고 있다.
◇디지털 시대를 맞이할 KT 주력사업
다가오는 디지털 시대를 초(超)통신으로 맞으려면, KT 주력사업은 ‘차세대 기간통신망 구축’, ‘디지털산업을 뒷받침하는 5G+Cloud+AI 인프라 확립’, 그리고 ‘디지털 서비스 플랫폼으로 생태계 동반성장 주도’의 세 가지로 재정의 될 것이다. 이를 하나씩 살펴보자.
경쟁사업자의 진출로 기간통신에서 수익성 저하가 생겼다. 그렇더라도 기간통신의 보편성과 위기대응 능력을 가져야 하는 KT는 차세대 기간통신망의 안정적 운용을 결코 소홀히해서는 안된다. 국가 존립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KT를 보면 통신망 경쟁력은 갈수록 저하되고 기간통신망은 심심찮게 다운되어, 국민은 불안해 한다. 국민기업 KT라면 마땅히 이런 중요한 역할에 충실하고, 이에 따른 보상은 규제기관으로부터 받도록 해야 한다.
5G+Cloud+AI 인프라 투자가 KT 성장에 저해요인일까? 아니다! 눈앞의 재무제표보다 미래성장 인프라에 투자해야 한다. 5G+Cloud+AI 인프라와 그 위에서 펼쳐질 디지털 서비스 플랫폼에 KT의 미래가 있다. 이런 인프라와 플랫폼 없이는 디지털 시대에 펼쳐질 디지털산업의 폭발적 성장을 KT는 누릴 수 없다. 일반주주도 아는 이런 미래가치의 중요성을 경영자가 외면해서는 곤란하다. 당장의 수익 때문에 28㎓ 대역을 반납하는 식의 단기적 사고에서 KT는 벗어나야 한다.
◇생태계와 동반성장
앞선 기고에서 논의한 것처럼, 미래는 개별기업간 경쟁이 아니라 기업생태계간 경쟁이다. 신성장 사업을 혼자 만들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생태계와 Open Innovation으로 동반성장 해야 한다. MS는 자기 덩치 100배가 되는 생태계를 이끌고 있다. 생태계를 이끄는 것이 비용이 아니고 투자이기 때문이다. 관련 생태계가 살아야 한국 디지털산업이 살고 KT가 산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도 이제 크게 성장한 만큼, 디지털산업 생태계를 이끄는 역할은 과거처럼 KT의 역할만이 아닌 이젠 그들과 나눠야 할 역할이다. 하지만 기간통신망을 가장 크게 관장하고, 더 중요하게는 디지털산업의 전방위 최전선에 접해있는 KT가 그 중심에 서는 게 맞고, 이는 KT에게도 장기적으로 이롭다.
◇시너지가 필요한 KT 부수사업
KT가 추진해온 부수사업을 콘텐츠를 예로 들어 한번 살펴보자. ‘우영우’ 성공을 거두었다. 잘한 일이다! 그런데 여러 실패 후 한번의 성공이 앞으로도 KT가 이런 저런 콘텐츠 사업에서 성공한다는 의미일까? 콘텐츠는 이미 잘하는 기업이 여럿이다. KT가 뚜렷한 경쟁우위를 가진 것이 없다. 그렇다고 콘텐츠를 그냥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게 가치 있다면 단순한 콘텐츠 경쟁을 넘어, 디지털 서비스 플랫폼으로서 콘텐츠 생태계와 그리고 KT 주력사업과는 어떻게 시너지를 내고 더불어 성장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부동산도 그렇다. 기술발전에 따라 요지의 부동산에 여유가 생겼다. KT는 이것을 뜬금없이 호텔 개발로 방향을 잡아 갔고,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만약 요지의 부동산을 주력사업과도 시너지를 낼 수 있고 잘할 수 있는 클라우드 사업으로 만들어 갔다면 지금은 수익과 성장을 구가하고 있을 것이다.
GE 몰락의 교훈은 모든 분야를 모두 잘 하는 기업은 없다는 것이다. 사업은 희망적 기대가 아니라 냉철한 분석에 기초해야 한다. 성장성과 경쟁력이 부족하다면, 그런 부수사업은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기업가치를 당장의 재무제표로만 평가하는 근시안적 시각에 빠져 있으면 KT가 망가지고 한국 디지털산업도 흔들린다. KT가 주력사업을 제대로 정의하고 이것으로 미래성장을 추구한다면, 지속적 성장하는 KT, 고객과 주주가 먼저 찾는 KT가 될 것이다.
최두환 전 KT 사장·전 포스코DX 대표
〈필자〉최두환 전 KT 사장·전 포스코DX 대표는 서울대 전자공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벨 연구소를 거쳐 벤처기업 네오웨이브를 설립했다. KT 사장과 포스코DX 대표를 역임했다. 광통신, 초고속 인터넷, 방송·통신·인터넷 융합 분야 기술개발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이를 산업으로 성공시켜 한국이 IT강국이 되는 기반을 마련했다. 또, 디지털 전환 선구자로 제조업이 하드웨어(HW) 사업에서 솔루션 사업으로, 나아가 서비스업으로 발전하는 기틀을 다졌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정보통신 분야 최고 영예인 ‘한국정보통신대상’을, 2019년 전자공학 분야 최고 영예인 ‘대한전자공학대상’을 수상했다. 앞서 1989년에는 뛰어난 연구개발(R&D) 능력으로 벨 연구소의 ‘Distinguished Member Award’도 1989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