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platform). 원래 프랑스어에 뿌리를 뒀다는 이것은 플라(plat)와 포름(forme)의 합성어라고 한다. 원래 구획한 뭔가를 의미했다고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기차 플랫폼 같은 구조물이나 단상이나 무대를 지칭하는 것이 됐다.
물론 얼마 전엔 다른 의미도 하나 챙긴 듯하다. 다른 응용 프로그램을 운용될 수 있는 기반이나 토대란 의미다. 이런 면에서 클라우드나 스트림이란 것과도 유사해졌다. 원래 물리적 의미를 갖던 데서 어느덧 디지털 세계에서 새 의미를 옷 입게 된 셈이다.
혁신의 속성엔 어떤 것이 있을까. 물론 여럿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분명 반전과 모순이다. ‘창조적 파괴’란 묘사는 이것의 정체성을 극명히 드러낸다.
실상 진부함은 혁신의 초석이 된다. 이 두 가지는 한동안 공존하지만 결국 서로의 모순은 반목하고 급기야 충돌한다. 그렇다고 종래의 원리가 사라지기만 하는 건 아니다. 종종 새 옷으로 재탄생하기도 하고 새로운 방식을 이해하는 초석이 되기도 한다.
파이프라인이란 용어를 떠올려 보자. 조금 과장하자면 이건 비즈니스 상식 같은 것이었다. 어느 기업이나 원료나 재료를 공급해 주는 기업에서 생산과 제조를 거쳐 소비자에게 이어진 긴 통로를 거쳐 가치와 수익을 만들어내는 것을 우리는 비즈니스라 불렀다. 적어도 산업혁명 이후 200여년간 이것에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구글, 애플, 우버, 에어비앤비가 실현해 낸 비즈니스란 다르다고 말한다. 이런 파이프라인의 논리를 파괴한 것은 아니지만 이 원리가 가치를 만들고 수익을 창출하는 필요조건이 아니라는 점을 보였다. 아니 다른 더 나은 방식이 있다는 걸 증명하기조차 했다.
페이스북을 보자. 이들은 콘텐츠라고 불리는 것을 그리 만들어내지는 않았다. 구글은 수없는 웹페이지를 만들어 내지 않았고, 애플은 자기 제품이 가동시키는 앱의 대부분을 그리고 알리바바는 자신이 판매하는 제품은 물론 그걸 소개한 온라인 매장까지 자기 손으로 만들어 내려 하지 않았다.
대신 누군가를 끌어들일 인센티브와 규칙을 제공하고 그리고 플러그-앤드-플레이할 수 있는 뭔가를 제안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이것엔 플랫폼이란 이름이 붙었고, 아마존과 페이스북의 뒤를 우버, 에어비앤비, 플립카트, 슬랙, 스포티파이가 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역할을 달리 말한다. 이들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가치 창출을 돕는다고 자신의 역할을 말한다. 이들은 가치 생태계라 불리는 것을 매우 짧은 기간에 새롭게 통합해 냈다.
아마존은 보더스 같은 오프라인 책방의 파이프라인을 전자상거래라 부르는 디지털 경상(鏡像)으로 바꾸었다. 넷플릭스도 이점에선 마찬가지다. 블록버스터가 다른 비디오 대여점을 압도했던 매장의 규모 경제성은 넷플릭스의 디지털 규모의 경제성과 경쟁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플랫폼 비즈니스로 진화했다. 애플이나 안드로이드가 노키아나 블랙베리를 압도한 이유에도 이것이 있었다. 아마존이 지금의 아마존이 된데는 제3자 판매자에게 자신의 디지털 파이프라인을 개방해 플랫폼으로 진화한 덕이었다.
우리는 파이프라인 방식이라는 걸 다루는 데 꽤나 익숙하다. 그리고 어쩌면 비즈니스는 이것을 더 정련함으로써 번성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플랫폼이나 생태계란 것에 익숙해져야 할 때다. 왜냐하면 참여의 혁신학은 이미 두 갈래로 진화를 시작한 탓이다. 더 나은 혁신의 탐색에 멈추지 말고, 혁신을 올려둘 원천을 창출하는 것 말이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