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첨단전략산업특별위원회에서 여야 의원이 기술유출 범죄의 양형기준을 상향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국가핵심기술 유출로 인한 피해가 수십조에 달하는 등 심각한 상황인데도 관련한 처벌 형량은 ‘솜방망이 수준’이라는 데 공감했다. 다만 첨단기술 보호 규제가 강화되면서 글로벌 첨단기술 공동연구 및 국제협력 등이 위축되는 것에 대해선 우려했다.
첨단전략산업특위는 25일 국가 핵심기술의 유출에 따른 정부에 종합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 정부 측에서는 중소벤처기업부·산업통상자원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법무부·특허청 등이 출석했다.
법무부는 이날 국정원 자료를 인용해 최근 6년간 적발된 산업기술 국외유출 사건은 총 117건이며, 피해예상액은 약 26조원이라고 밝혔다. 이 중 국가핵심 기술 유출은 36건으로 약 30.7%에 해당된다. 또 국내외 기술유출로인한 연간 피해 규모 추정 금액은 약 56조원에 달한다. 이는 우리나라 총 연구개발 예산 93조원의 60.4%에 달한다.
이노공 법무부 차관은 “일반 형사 사건 무죄율은 1%대이지만 기술유출 범죄의 경우 19.3%로 무죄율이 높고, 유죄로 선고되는 경우에도 평균 형량은 1년 3개월 수준”이라며 “2017년 양형 기준이 상향되고, 2019년 산업기술보호법 등으로 법정형이 상향되었으나, 여전히 ‘온정적 선고형’에 머물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질의에서 “일반 사건에 비해 무죄율이 20배 가까이 높은 것은 말도 안되는 수치”라며 “압수수색을 통한 수사방식으로는 부족하고, 합법적으로 범죄 수사시 통신제한 조치 활성화 등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원옥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가 핵심기술 법정형이 국내의 경우 상한선만 있고 하한선은 없다”면서 “최소 1년 이상으로 양형 최소 기준을 올린다면 6개월을 받거나 하는 경우는 없어지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전 세계적으로 기술 유출 범행 수법이 점점 교묘해지면서 해외 각국에서는 기술유출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외 유출사건의 평균 피해액인 2330억원 기준으로 비교했을때, 미국에서는 최소 10년, 최대 21년을 형벌한다. 우리나라는 최대 가중영역의 형량이 6년에 불과하다. 법정형 상한인 15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이에 여야 의원들은 글로벌 수준으로 양형 수준을 끌어올려야 하는 데 이견이 없음을 확인했다.
이 이외에도 중소기업들의 비즈니스모델 탈취에 대한 대응 방안 마련도 정부에 요구했다.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에는 기술보다 비즈니스모델에 대한 탈취를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며 “비즈니스모델의 경우 탈취를 증명하기가 굉장히 어려운데, 중기부와 특허청에서 이같은 피해 사례를 방지할 수 있는 대응책을 적극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첨단기술의 유출에 대한 감시와 제재 강화에 나서면서 관련 학계나 연구기관 등에서 해외 공동 연구가 위축될 수 있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은 “해외 공동 연구와 같은 부분에서 불편함이 없도록 포괄적인 예외 규정을 만들었다”며 “다만 실증연구와 같은 부분은 바로 산업화와 연결되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기술보호전문위원회에서 신속하게 검토해서 판단해 주려 한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향후 ‘국가전략기술’에 로봇과 원전산업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은 “전기차도 국가전략기술에 뒤늦게 추가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미래산업의 핵심인 로봇과 원자력도 국가 첨단산업으로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특위 위원들은 △기술보호 수준이 상대적으로 미흡한 중소·중견기업 및 대학의 기술보호 역량 강화를 위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 △ 산업기술 유출 방지를 위한 범정부 컨트롤타워의 점검 및 산업기술보호법, 국가첨단전략산업법, 국가전략기술법 등 기술유출 방지와 관련한 법률 간 관계 정립 △기술경찰 운용 시 해외전담 인력 보강 및 기술유출범죄 전담부서 마련 등 수사의 전문성 제고 방안 △반도체 분야 퇴직자의 특허심사관 채용을 이차전지, 바이오 등 타 분야로 확대하는 등 퇴직인력 활용방안 마련 등 정책 대안을 주문했다.
유의동 위원장은 “전 세계적으로 첨단기술에 대한 패권 전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어렵게 개발한 기술의 유출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면서 “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예방 조치·유출 시 효과적 대응·재발 방지를 위한 인프라 구축 등 세 박자가 골고루 갖추어져야 실효성 있는 방지체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