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미래차 시대를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로 도약하기 위해 과감하게 손을 맞잡았다.
삼성과 현대차의 전장부품 협력 확대는 전기차와 자율주행 등 미래 모빌리티 시대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파격 행보다. 디스플레이로 시작한 전장부품 분야 협력이 배터리, 반도체 등 차세대 먹거리 사업 분야로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재계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가 현대차와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두 회사 간 전장 파트너십이 더욱 긴밀해질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린다.
그동안 재계 1위 삼성과 3위 현대차는 특정 사업군에서 협력 사례가 많지 않았다. 두 그룹은 과거 수직계열화 시기 현대의 반도체산업, 삼성의 자동차산업 진출 등으로 경쟁 관계를 촉발했다. 각각 해당 사업을 마무리하면서 경쟁 분위기는 약화됐지만 여전히 세부 사업 분야에서는 이렇다 할 협력 성과가 없었다.
이런 분위기는 이 회장과 정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2020년대 이후 반전됐다. 이 회장과 정 회장은 수 차례 단독 회동을 통해 미래차 사업 분야 협력을 논의하며 함께 전장 사업 밑그림을 그려왔다. 그 결과 삼성은 2021년 현대차 첫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5 디지털 사이드미러용 OLED 공급이라는 의미 있는 협력 물꼬를 텄다.
배터리와 반도체, 디스플레이, 센서 등의 중요성이 커지는 미래차 전환기 전장부품은 글로벌 기업이 주목하는 신성장동력이다.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 등에 따르면 글로벌 전장부품 시장은 2024년 4000억달러(약 527조원)에서 2028년 7000억달러(약 923조원)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2016년 미국 전장부품 기업 하만을 인수한 삼성은 최근 이 회장 주도 아래 전장 사업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이 회장은 완성차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남을 이어가며 직접 세일즈까지 나섰다. 지난해 올리버 집세 BMW그룹 회장을 만난데 이어 이달 10일 미국 실리콘밸리를 찾아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회동했다.
삼성디스플레이 역시 축적한 OLED 기술력을 바탕으로 지난달 페라리와 차량용 디스플레이 개발 협력을 추진하는 등 관련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미래차 시대 견고한 파트너십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삼성과 현대차가 디스플레이를 계기로 배터리와 반도체, 센서, 인포테인먼트 등 전장부품 협력을 전방위로 확대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는 이유다.
앞서 정 회장은 2030년까지 전기차 364만대를 생산해 글로벌 톱3 업체로 도약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제시했다. 글로벌 주요 완성차들이 전기차에 올인하면서 규모의 경제 중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현대차 입장에선 파트너를 보강해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양사는 차세대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분야에서 협력할 가능성이 높다. 현대차가 LG에너지솔루션, SK온에 이어 삼성SDI로 배터리 협력사를 확대한다면 공급처 다변화는 물론 물량 확보 면에서 경쟁사보다 우위를 점한다. 서로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윈윈 사례가 될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과 현대차의 공고한 파트너십 구축은 미래차 연구개발과 생산, 인프라 등 국내 자동차산업 전후방 생태계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치연 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