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영상산업은 플랫폼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가 상호의존적 관계이면서, 상호경쟁적 관계를 나타내는 독특한 시장이다. 플랫폼 사업자는 시청자의 선택을 받는 콘텐츠를 선택하고, 콘텐츠 사업자는 시청자에게 도달률이 높은 플랫폼을 선택하는 관계에서 상생해야 하는 구조다. 우리나라 시청자 97.4%가 지상파를 유료방송 플랫폼을 통해 시청 중임을 고려할 때 두 산업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종합편성채널과 일반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도 유료방송 플랫폼을 이용하지 않고는 시청자에게 도달할 수 없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본격 진출과 유료방송 산업은 플랫폼과 콘텐츠 사업자와 구분없이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엄청난 경쟁압력을 맞이하고 있다.
유료방송 사업자는 산업 안팎의 경쟁이 가속화되고, 유입 재원이 감소(ARPU의 정체, 방송광고의 감소 등)하며 유료방송 플랫폼 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간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유료방송 플랫폼 시장은 사업자간 인수합병을 통해 IPTV 중심의 과점 체제로 재편되고 있으나, 시장진입이 자유로운 국내 PP가 난립해 경쟁하는 상황으로 재원 배분의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다. 플랫폼 사업자가 이용자에게 이용료를 높여 받을 수 없는 구조에서 콘텐츠 거래 대가가 내·외부 요인으로 증가하고 있으나, 실제로 유료방송 플랫폼 사업자가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시점이 도래했다. 현재 OTT로 인해 독립제작사에 대한 투자가 중첩되고 확대되고 있으나, 유료방송 생태계 내 콘텐츠 사업자는 광고나 협찬같은 부가 수익에 의존해 콘텐츠를 제작하는 비정상 구조가 심화하고 있다. 국내 방송사의 경우 재투자 의지가 낮은 상황에서 최근 제작비가 급격하게 증가함에 따라 디지털 플랫폼 투자에 의존이 심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OTT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으며, 국내 방송사의 경쟁 열위가 누적되고 있다. 지상파를 비롯한 주요 방송 영상사업자의 매출 다변화 전략이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유료방송 사업자들은 매출 다변화에 대한 구조적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이런 환경적 요인에 따라 지상파를 비롯한 방송사들은 자체채널에만 콘텐츠를 공급하던 것에서 벗어나 OTT에 경쟁적으로 콘텐츠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지상파의 경우 광고비와 재송신료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OTT에도 콘텐츠를 공급함에 따라 가뜩이나 부족한 유료방송 플랫폼의 경쟁력을 붕괴시키는 역할이 될 수 있는 우려가 존재한다. 지상파가 초방으로 제작한 콘텐츠를 OTT에는 거의 실시간으로 공급하고 있으나, 유료방송 VoD에는 약 3주간 대기기간이 있어 차별적 공급을 하는 것도 문제다. 지상파를 비롯한 유의미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콘텐츠 사업자는 매출 다변화 전략이 마련된 것과 반대로 유료방송 플랫폼 사업자는 매출 다변화에 대한 제약이 많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지상파를 중심으로 콘텐츠가 유료방송 플랫폼 성과에 미치는 영향과 거래 대가의 변화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시청률의 변화를 살펴보면 지상파 및 지상파 계열 PP가 유료방송 전체 시청률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3년 54.93%에서 2021년에는 34.89%로 약 37%p감소했다. 유료방송 플랫폼의 영향력이 크게 줄고 매출 증가폭이 둔화돼 올해 0%대 성장률에 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콘텐츠 사업자 특히, 지상파 사업자가 유료방송 플랫폼 사업자에게 받는 대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유료방송 플랫폼 사업자가 이용자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VOD 일명 FOD(Free Video on Demand)는 실제로는 무료가 아니다. 유료방송 플랫폼 사업자가 FOD에 대한 대가도 지상파에게 지급하고 있다. 전체 FOD 시장에서 지상파가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지상파 콘텐츠가 2012년에 전체 FOD 이용량의 약 60%를 상회하였으나 2022년에는 30% 수준으로 절반 가까이 그 비중이 축소되었다. 절대 이용건수도 2019년을 정점으로 2022년에는 19년 대비 1/3으로 감소하였다. 연평균 -18.8%로 역성장을 하고 있다.
반면에 유료방송 플랫폼 사업자가 지상파에 지급하는 재송신료는 꾸준히 늘고 있다. 지상파 재송신료는 지상파 콘텐츠를 유통하는 대가로, 유료방송 플랫폼 사업자가 지상파에게 지급하는 콘텐츠 대가를 말한다. 지상파는 보도 등 다양한 협상 우위 요소를 바탕으로 매년 재송신료를 인상하고 있다. 지상파 3사가 유료방송 플랫폼 사업자에게 받는 재송신료는 2013년 1254억원에서 2021년 4079억원으로 약 3.2배나 증가했다.
여러 자료를 검토하였을 때 지상파 재송신료의 산정방식에 대한 이해관계자의 논의가 필요하다. 지상파와 유료방송 사업자간 협상력 균형이 필요한 시점이다.
추가적인 연구와 보완이 필요한 것을 전제로 2013년 이후 광고의 시청률 탄력성과 지상파 시청률의 변화율을 통해 지상파 가치를 탐색적으로 조사한 결과 지상파 콘텐츠의 가치는 약 50%가 하락했고 FOD의 경우 70%이상 가치가 감소했다. 지상파 콘텐츠가 유료방송 플랫폼의 상품성을 높이고 성과를 어느 정도 책임지는지 면밀한 재검토가 요구된다.
유료방송 산업의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지상파 콘텐츠의 가치 재평가, 채널 성과와 연동된 프로그램 사용료 배분 정책, 공정한 거래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지상파의 경우 프로그램 사용료 및 채널 배정에 대한 적정 평가와 산정기준 없이 협상에 임하고 있다. 지금처럼 이용량 기준 또는 시장 영향력에 의한 협상이 아닌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성과 중심의 사용료 협상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현재 정부 주도의 대가 산정 협의체가 운영되고 있으나 지상파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콘텐츠와 플랫폼 간에 비대칭적 협상력을 행사하는지, 공정한 거래인지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모니터링과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용희 오픈루트 연구위원 yh.kim81@dgu.ac.kr
〈필자〉김용희 교수는 정보통신기술(ICT)과 미디어 분야 전문가다. 미디어와 경영 관련 학회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미디어 정책 관련 각종 연구반과 태스크포스(TF)에서 활동하며, 미디어 산업을 보는 폭넓은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미디어 산업에 사회·경제 효과 연구를 지속하고 있으며, 미디어 컨설팅과 연구를 수행하는 오픈루트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