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7일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불리는 고(故)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30주년을 맞았다. 임직원들은 30주년이 주는 상징적 의미에도 특별한 이벤트 없이 평소와 다름없이 업무에 임했다.
이날 차분한 분위기에도 최근 부쩍 잦아진 이재용 회장의 외부 및 현장 행보는 그룹 안팎의 긴박함을 보여준다. 이 회장의 대외활동이 늘어나면서 ‘뉴 삼성’ 비전에 대한 기대도 높아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해 10월 27일 별도의 취임식이나 취임사도 없이 회장으로 취임했다. 이날 이 회장의 첫 공식 일정은 삼성물산 합병 의혹 관련 공판 출석이었다. 이후 초기 행보는 비공개 현장 방문 수준이었다.
이와 비교하면 최근 이 회장의 대중 노출 빈도가 크게 늘었다. 재계가 선대회장의 삼성전자 신경영 선언 30주년 관련, 이 회장의 새로운 30년을 이끌어갈 ‘뉴 삼성’ 비전을 기대하는 이유다.
이 회장이 그리는 뉴 삼성 비전은 올해 발언 등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다. 주문은 다양했지만 그 줄기는 ‘기술·인재·미래’를 벗어나지 않았다.
이 회장은 지난 3월 구미전자공고 방문에서 “젊은 기술인재가 제조업 경쟁력의 원동력입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달 1일에는 회장 승진 이후 첫 삼성호암상 시상식 참석으로 관심을 받기도 했다. 삼성 측은 “선대의 ‘사업보국’ 철학을 지속 계승·발전시켜 국가 발전에 더욱 기여하고, 삼성의 ‘뉴 리더’로서 사회와 함께하는 ‘미래동행’ 의지를 보여줬다”고 풀이했다.
지난해 6월 유럽 출장 후 귀국하며 김포공항에서 했던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재도 기술”이라는 발언도 유명하다. 올해 초 아산 삼성디스플레이 방문에선 “끊임없이 혁신하고 선제적으로 투자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실력을 키웁시다”라며 기술에 대한 선제적 투자를 통한 미래 준비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 회장의 ‘기술·인재·미래’ 뉴 비전은 삼성전자가 다시 글로벌 선도 기업으로 위상을 가져가야 한다는 생각에 근거한다. 회장 취임 이틀 전인 지난해 10월 25일 사장단 간담회에서 그는 “안타깝게도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새로운 분야를 선도하지 못했고, 기존 시장에서는 추격자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고 자평한 바 있다.
이 회장의 대외활동이 점차 많아지면서 대중의 시선도 보다 긍정적으로 변화될 전망이다. 부산엑스포 유치는 개최국 선정 투표가 채 반년도 남지 않은 만큼, 이 회장의 글로벌 네크워크를 통한 본격적인 유치지원 활동이 펼쳐질 전망이다. 이 회장은 당장 21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4차 경쟁 프리젠테이션 지원을 위해 현장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과거 선대회장의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지원 활동을 떠올리게 한다. 1996년 IOC 위원으로 선출된 이건희 전 회장은 조세포탈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자 자발적으로 IOC 위원 자격을 중단했었다. 하지만 체육계와 지자체 요청으로 사면·복권됐고, 동계올림픽 유치에 공을 세우며 국민에게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이 회장은 지난해 광복절 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지만 지금은 삼성물산 합병 이슈로 재판에 참석하는 상황이다. 사법 변수가 여전한 상황에서 부산엑스포 유치 성공은 이 회장의 대중적 긍정 인식을 높이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재개 관계자는 “불황 장기화와 실적 부진 겹친 삼성전자의 지금 상황에선 보다 적극적인 리더십이 필요해 보인다”라며 “부산엑스포 유치전이 극에 달하고 취임 1주년이 되는 시점에서 등기이사 복귀와 새로운 전략 제시 등 이 회장만의 색깔 있는 리더십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조정형 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