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제2도시인 크라쿠프에서 차로 1시간 30분 가량을 달리자 돔브로바고르니차시에 도착했다. 수도인 바르샤바에서 남서부로 약 300㎞ 떨어진 폴란드 최대 산업지대 중 하나다. 유럽 첫 전기차 배터리 분리막 공장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폴란드 공장이 이 곳에 자리했다.
SKIET 분리막 공장은 남다른 위용을 뽐냈다. 축구장 약 80배 크기에 달하는 57만㎡(약 17만평) 규모 거대한 부지 위에 지어졌다. SKIET는 이곳에서 전기차용 배터리 핵심부품인 리튬이온 배터리 분리막(LiBS)을 생산한다. 유럽 지역 분리막 수요 확대를 예측하고 2조2000억원 규모로 선제 투자했다.
2021년부터 가동된 폴란드 1공장에서는 연간 최대 3억4000만㎡ 규모 분리막을 생산할 수 있다. 현재 시운전 중인 2공장을 포함해 오는 2024년까지 3~4공장을 모두 완공해 가동한다는 목표다. 1~4공장이 모두 가동되면 연산 15.4억㎡ 규모 분리막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중형 전기차 약 205만대에 쓰이는 배터리에 공급할 수 있는 양이다. 2025년이면 유럽 지역 내 분리막 전체의 30%에 가까운 수요에 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지에서 만난 마르친 바질락 돔브로바고르니차 시장은 “과거 돔브로바고르니차는 철강과 탄광업 위주였지만 SKIET 분리막 공장이 들어선 이후 전기차를 중심으로 하는 친환경 산업 생태계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전기차 배터리 안전성 확보 핵심…“품질 자신감”
분리막은 리튬이온 배터리 4대 핵심소재 중 하나로 양극과 음극의 접촉을 차단하고 리튬이온 이동 통로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한다. 음극과 양극이 만나 단락이 발생할 경우 화재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안전성을 담보하는 핵심 소재다.
1공장 내부로 들어서자 후끈한 열기와 엄청난 소음이 압도했다. SKIET가 만드는 습식분리막은 폴리올레핀과 오일을 혼합한 일종의 반죽을 고온에서 압출해 시트를 주조하는 공정으로 시작된다. LiBS 생산 유닛 이경구 PM은 “균일한 결과물을 만들기 위한 온도 조절이 핵심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두께를 늘리고 강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시트를 가로와 세로로 순차적 늘리는 ‘축차연신’ 공정은 SKIET가 세계 최초로 상업생산에 성공했다.
습식분리막 생산 공정의 핵심인 추출 공정에서는 용매를 이용해 분리막 내 오일 성분을 제거해 기공이 형성되도록 한다. 이후 열에 의한 수축이나 변형을 방지하기 위한 열처리 공정을 거쳐 두루마리 형태로 감는 와인딩 공정을 거치면 반제품인 LiBS 원단이 완성된다.
롤 형태의 원단은 천장에 설치된 OHT(Overhead Transfer)를 통해 자동으로 세라믹 코팅(CCS) 공정으로 옮겨진다. 원단 위에 열에 강한 세라믹을 코팅해 분리막이 수축되거나 찢어지는 것을 방지한다. 코팅을 마친 분리막은 자동화 물류 설비를 통해 창고로 보내진다.
◇유럽 생산거점 넘어 북미 진출 전초기지로
이곳에서 생산된 분리막의 약 80%는 헝가리와 미국 SK온 전기차 배터리 공장으로 공급된다. 유럽 내 신규 배터리 제조사가 속속 등장하고 완성차 업체도 배터리 기술 내재화를 시도하면서 고객사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응한 북미 현지 공장 구축까지 3~4년의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그 이전까지 폴란드 공장 생산품으로 대응할 계획이다.
박병철 SKIET 폴란드법인장은 “글로벌 고객사들로부터 많은 문의가 오고 있어 샘플 요청에 대응하느라 분주하다”면서 “고객 포트폴리오 다양화를 통해 장기적으로는 SK온과 글로벌 고객사 비중을 50:50 수준으로 가져가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향후 유럽에서는 한·중·일 분리막 기업간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헝가리에는 일본 도레이 분리막 공장이 있고 중국 시니어와 상하이에너지는 스웨덴과 헝가리에 공장을 짓는다. 특히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중국 기업들과 진검승부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박 법인장은 “중국 내수 시장에서 경쟁할 때는 보조금, 환경규제, 산업 생태계 등에서 열세에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게돼 생산성, 기술, 품질 경쟁이 중요해질 것”이라며 “동시에 원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공장 자동화를 확대하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돔브로바고르니차(폴란드)=
정현정 기자 ia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