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잉 787 드림라이너의 첫 디자인은 우리가 알던 전통적 항공기와 비슷했다고 한다. 하지만 연료 효율적이고 환경 친화적이라는 개발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그대로 추진됐었다면 또 하나의 상용기는 되었겠지만 EVP였던 제임스 알보(Jim Albaugh)가 말한 “21세기 최초의 진정한 새로운 비행기”와는 거리 멀었을 수 있겠다.
대신 날개와 동체 대부분은 복합소재로 제작돼야 했고, 설계와 제조도 보잉과 파트너들이 자체 연구 개발에 자금을 대고 세계에 흩어져 있는 제조 공장에서 비행기 부품을 제작해 조립 공장으로 옮기기로 했다. 부품과 공정 통합을 관리하기 위해 당시로선 최대 규모였던 프로젝트 라이프-사이클 매니지먼트(Project Life-Cycle Management (PLM)) 시스템도 개발했다.
프로젝트 내내 공정 지연과 막대한 비용 초과에 시달렸다. 결국 첫 비행기는 수십억 달러의 비용 초과 이후 일정보다 40개월 늦게 인도될 수 있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지속가능하고 효율적 항공기라는 목적에 부합할 수 있었다.
이 사례는 어떤 프로젝트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할 때 목적이 중요한 이유를 말할 때 사례로 종종 인용된다. 그리고 우리가 상기하는 이 프로젝트란 공공정책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굳이 요즘 이 사례가 회고되는 건 정책의 성공적 수행이 단지 몇 건 같은 수치나 단기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의 역량이나 국가 경쟁력 나아가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그런 영향과 효과여야 한다는 인식이 더없이 커지고 실상 중요한 탓이다.
꽤나 오랫동안 전문가들은 부처가 지나치게 단기 목표나 성과 혹은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우선하는 경향이 있다고 우려해 왔다. 실상 이런 선택이 이해 안 되는 바 아니다. 근본적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누군가 해보자고 한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오랜 경험이 말해주고 있음직도 하다.
이런 주저함의 배경에 공무원의 보직이나 심지어 장관의 임기라는 것이 고작 1 ̄2년에 지나지 않고, 임기 내에 성과가 중요해진 때문도 있겠다. 그동안 공무원의 업무고과가 조직에서 문제 안 일으키고 법제화나 예산 같은 실적이 중요한 기준이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실상 부처마다 꼭 해야 함에도 미뤄왔거나 미룰 수 밖에 없었던 사안들이 있겠고, 대증적 수단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에 손을 대야 하는 그런 난제들에 무엇이 있는 지 가장 잘 아는 것도 부처와 공무원들일 것이다.
지금처럼 부처업무평가부터 평가과정이 촘촘히 짜여 있는 성과목표란 걸 달성하는 것이 최우선될 수 있겠다. 하지만 어느 계획이든 이들 성과목표 앞에 그 정책이나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와 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 지 기술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 볼 시점이 된 듯하다.
요즘처럼 대형 공공 프로젝트가 문제로 거론되는 시점에서 논쟁적 사례일 수 있지만 첫 착공 기한마저 지키지 못했던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완성엔 “만일 공연과 예술이 현대 문명사회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시드니는 자신의 재능과 창의성을 선보일 수 있는 그런 기념물을 가질 만하다”이란 목적이 분명한 지향점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다.
이 두 다른 프로젝트의 분명한 공통점은 목적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그런 가치를 창출했다는 것 그리고 이 과정에서 관련 이해 관계자들에게 영감과 동기를 부여하고 구성원의 역량을 재충전하고 조직 문화를 재구성해야 했다는 점이 있었다고 한다.
정책의 영향과 효과성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모두의 참여와 호응을 높이자면, 미뤄온 난제의 뻔히 보이는 잦은 재조정과 조율 과정을 뚫고자 한다면 정책에서도 그 계획의 첫 줄을 숙고하는 것, 즉 목적이 기반된 정책이 중요한 때라고 여겨진다.
박재민 건국대 교수·ET대학포럼 좌장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