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계가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발언 이후 긴장하고 있다. 라면에 이어 가격 인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부담감이 커지고 있어서다. 가격 인하 압박에 라면 3사를 포함한 식품사들은 대체로 이틀 연속 주가도 맥을 못추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식품업체들은 이번주 장이 시작된 지난 19일부터 이틀 간 주가가 하락하거나 소폭 반등에 그치고 있다. 앞서 추 부총리는 지난 주말 한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 “지난해 9, 10월 (라면값이) 많이 인상됐는데 현재 국제 밀 가격이 1년 전보다 약 50% 내려갔다”며 “기업들이 밀 가격 하락에 맞춰 적정하게 판매가를 내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제 밀 가격이 최근 떨어진데 대해 이를 소비자가격에도 반영하라는 의미다.
이 같은 발언 이후 식품업계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새다. 특히 라면 업체들은 “국민 부담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도록 여러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면서도 “다만 당장 라면 가격 인하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입을 모아 토로했다.
추 부총리가 언급한 밀가루의 경우 라면 업체들은 제분사를 통해 공급받아 이를 가공해 생산한다. 양 측의 공급 계약은 통상 최소 6개월 이상으로 작년 오른 밀가루 값이 원가에 반영돼 최근 원재료 하락분은 반영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 탓에 당장 가격 인하 조치를 단행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한 라면 업체 관계자는 “밀가루는 최근 글로벌 가격이 하락세지만 나머지 전분, 설탕 등 원재료가는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다”며 “원재료 뿐 아니라 인건비, 물류비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어 원가 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라면뿐만 아니라 밀가루를 주요 원재료로 쓰는 제과·제빵 업체나 가공식품사들도 불똥이 튈까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다. A식품사 관계자는 “이번엔 라면 업체들이 타깃이 됐지만 밀가루를 원료로 제품을 만들고 있는 만큼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당장 하반기 가격 인상을 검토 중이던 업체들은 계획을 보류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농심·삼양식품·오뚜기 등 주요 라면 3사 주가에도 반영됐다. 삼양식품은 19일 전 거래일(16일)보다 7.79% 하락했고 농심과 오뚜기도 각각 6.05%, 2.94% 떨어졌다. 20일 종가 기준 농심과 오뚜기는 전일보다 각각 0.61%, 1.05% 추가로 하락했고 전일 낙폭이 컸던 삼양식품은 2.09% 소폭 반등하며 장을 마쳤다. 이 밖에 동원, 대상, 롯데웰푸드 등도 소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특히 오리온의 경우 작년 9월 일부 제품 가격을 평균 15.8% 인상하면서 향후 원재료 가격 인하분을 가격에 반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B식품사 관계자는 “원재료 가격뿐만 아니라 인건비, 물류비, 에너지 비용이 모두 높아진 상황”이라며 “원재료의 경우 올해 전 세계가 ‘슈퍼 엘니뇨’를 겪고 있어 가격이 안정화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효주 기자 phj20@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