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라는 피터 드러커의 말은 경영의 세계에서만 통하는 것이 아니고, 거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보편 타당한 원리에 가깝다. 건설산업의 혁신도 마찬가지다. 건설산업은 개별 건설프로젝트의 합집합이고, 건설산업 생산성을 포함한 여러 성과지표는 개별 건설프로젝트 성과지표의 대푯값일 것이다. 따라서 건설산업이 혁신한다는 것은 우선 개별 건설프로젝트에서부터 혁신이 적용되고,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것은 개별 건설프로젝트의 성과가 철저히 평가되고 분석되는 과정을 바탕으로 건설산업 차원의 혁신이 가시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개별 건설프로젝트의 성과평가가 정확히 진행돼야, 건설산업 차원의 개선과 혁신이 측정될 수 있고 관리될 수 있다는 것이다.
건설프로젝트의 성과평가에 있어 잘 알려진 해외 사례를 살펴보자. 미국은 CII(Construction Industry Institute)에서 1995년부터 CII Benchmarking and Metrics(BM&M) 프로그램을 운영, 이를 기반으로 많은 참조 데이터를 축적했다. 이후에 세계적으로 프로그램을 확장하고 있으며, 근래에는 인풋 척도 10개와 아웃풋 척도 10개를 이용해 프로젝트 성과를 평가하는 10-10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CII의 회원사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한다는 한계는 있지만,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프로그램이다.
영국은 1999년부터 건설산업의 KPI(Key Performance Indicator)를 발표해오고 있다. 처음에는 발주자 만족도, 비용 예측성, 공기 예측성, 이윤과 생산성 등을 위주로 평가했지만, 현재는 시공자 만족도, 시공단계에서의 에너지·물 사용 정도, 폐기물 발생량, 인적자원에 대한 교육·훈련, 안전사고 관련 지표 등도 포함해 발표하고 있다. 사회가 건설산업에 요구하는 가치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발전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공공건설사업 수행성과를 평가하고 차후 유사사업 추진 시 이를 활용해 공공건설사업 효율화에 기여한다’는 취지로 2000년부터 건설공사 사후평가제도를 도입·시행 중이다. 건설기술진흥법 제52조에 따르면, 총공사비 300억원 이상 건설공사에 대해 발주청이 사후평가를 하고 사후평가서를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사후평가의 주요 내용은, 예상 공사비 및 공사기간과 실제로 투입된 공사비 및 공사기간의 비교·분석, 공사 기획 시 예측한 수요 및 기대효과와 공사 완료 후의 실제 수요 및 공사효과의 비교·분석, 해당 공사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주민의 호응도 및 사용자의 만족도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자료가 체계적으로 축적되고 분석돼 피드백되고 활용된다면, 건설프로젝트 성과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제도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첫째, 건설사업정보시스템에 들어가 보면 사후평가 대상 공사 중 63%(누적 기준) 정도만 관련 자료를 입력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입력 자료의 품질이나 정확도는 차치하더라도, 40% 가까이 입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니, 공공 발주청이 법을 우습게 여기는 것인지, 국토부가 의지가 없는 것인지, 정말 어이가 없다. 둘째, 건설기술연구원의 분석자료를 보면 사후평가 미이행 사유에 ‘공기지연’, ‘예산미확보’, ‘통합발주’ 등 내용이 보인다. 이런 내용이 축적돼야 타 프로젝트에 도움되는 피드백이 가능할텐데, 시험을 못 봤기 때문에 채점을 안하고 성적표도 안받겠다는 학생과 뭐가 다른지, 또다시 어이가 없어진다. 셋째, 아무리 봐도 사후평가 결과를 새로운 건설프로젝트 관리에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나 활용 사례에 대한 얘기를 찾을 수 없다. 성과평가는 피드백 루프가 확실히 구축돼 가동될 때 의미를 가지는데, 이게 없다면 반쪽짜리 시스템에 불과하다. 늦게나마 2020년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관련 센터를 만들어 사후평가를 체계적으로 시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2021년부터 성과분석 보고서를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지만, 이 센터가 어느 정도의 권한을 가지고 발주청의 사후평가를 독려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체중이 얼마인지도 모르면서 다이어트를 할 수는 없다. 효율적 건강관리를 위해서는 여러 건강지표를 주기적으로 체크해야한다. 경영성과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피드백 루프가 잘 작동해야 하고, 피드백 루프의 핵심은 성과측정에 있다. 건설프로젝트를 혁신하고 건설산업의 성과를 혁신적으로 향상시키고 싶다면, 제대로 정확히 측정하고 제때 피드백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공공 발주청에 국한되어 있는 건설프로젝트 사후평가를 민간 건설프로젝트 범위로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하며, 실효성 있는 성과관리가 될 수 있도록 하루 속히 강력한 실행방안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건설혁신의 첫걸음은 정확한 진단에서 시작된다.
유정호 광운대 건축공학과 교수 myazure@kw.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