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은 2004년 미국 국방연구소 주관 다르파 챌린지를 통해 본격적 개발이 시작됐다. 2014년 미국 자동차공학회(SAE)에서 자율주행 레벨을 여섯 단계 가이드로 제공하면서 레벨별 자동화가 차근차근 상용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내비건트 리서치는 세계 자율주행차 시장규모가 2020년부터 2035년까지 평균 84.2% 성장한 6299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IHS마켓은 2035년 자율주행차 판매대수가 2100만대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레벨 구분 이후 1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세계 자율주행 상용화는 지연되고 있는 모양새다. 가장 앞선 업체로 평가받는 구글 웨이모는 로보택시 서비스를 피닉스·샌프란시스코 등 일부 지역에서 임시 운행을 제한된 형태로 선보였다. 우리나라도 스타트업 중심으로 자율주행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시범 서비스 형태로 일부 지역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자동차 업계에서도 자율주행에 뛰어들고 있지만 우리의 손과 눈이 자유로운 자율주행 3단계 수준도 아직 찾아보기 어렵다. 세계 5위 수준으로 평가됐던 아르고AI가 지난해 말 폐업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자율주행 혁신은 아직 돌파구가 잡히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처럼 자율주행은 어려운 도전으로 보이지만 지속적인 시행착오를 거치면 어느 순간 큰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우리에게 놀라움을 주고있는 챗GPT 등 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한때 1980년대 순환신경망 개념을 사용하며 큰 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다 2017년 구글에서 발표한 어텐션 개념의 트랜스포머 모델 등장으로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우리는 챗GPT AI 기술을 쉽게 활용할 수 있는 환경에 놓였다.
자율주행 분야에서도 테슬라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SW)인 완전자율주행(FSD) 성능을 조금씩 높이고 있다. FSD는 사용자의 데이터 수집을 통해 업데이트를 지속하고 있다. 현재 버전 11.4.2 배포 등 서비스 완성을 한 번에 접근하기보다 개선 과정을 통해 발전하며 점점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자율주행 분야에서 우리 기업의 가시적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선 장시간 사용자 피드백 제공이 가능해야 한다. 솔루션을 찾기 위해 도전을 지속하는 환경 제공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지점에서 우리의 혁신 환경을 되돌아볼 필요도 있다. 우리가 자율주행 서비스에 대한 양질의 피드백을 제공해줄 환경인지, 피드백을 수용해 발전할 기업의 지원 환경은 갖춰졌는지 대해 점검해야 한다.
먼저, 자율주행에 대한 사용자 피드백 문제다. 자율주행 기술의 디테일한 개선을 위해서는 주행 데이터 수집이 필요하다. 주행 중 수집한 각종 영상 등 정보를 연구개발에 쉽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데이터에 개인 정보를 알아볼 수 없도록 비식별화 작업을 거쳐야 그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다.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국내 업체에게 어려운 점이 있다. 또, 이러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개별 차량도 많아야 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연구개발용 자율주행 임시운행을 허가받아 운행하는 차량은 60여개 업체의 360여대로 나타났다. 반면, 웨이모가 샌프란시스코 등에서 운영하는 차량은 700대 이상이다. 테슬라 FSD 사용자가 국내와 북미에서 격차를 줄이기 위한 우리만의 획기적 서비스 고안이나 다른 방면의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또, 사용자 피드백을 받으면 이를 개선할 수 있도록 기업이 충분한 법·제도적 지원을 받아야 한다. 낮은 수익성을 감내할 수 있도록 사회적 도움도 있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자율주행차 상용화 촉진 및 지원 관련 법률’을 통해 충분한 법·제도 지원을 추진하고 있는 점은 다행이다.
독일은 업체가 자율주행 4단계 차량을 사업자에게 판매가 가능하도록 했다.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국내 정부와 국회에서 유사법 개정 작업에 착수한 것도 매우 고무적이다. 앞으로 자율주행 4단계 수준의 안전 기준과 해킹을 방지할 보안 대책 등 안전성 부분도 제도적 뒷받침되길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기존 이해관계자와 관계 정립이다. 해외에서 자율주행 기술을 적용한 로보택시는 운행에 큰 어려움이 없으나 우리는 쉽지 않다. 국내 업체들이 자율주행 시범 서비스로 오송역과 세종시간 자율주행 버스, 서울 강남구 로보라이드 등 지자체 시범 운행지구에서 다양하게 활동 중이지만 테스트를 위해 혁신 서비스 도입과 확장에 제한이 없어야 한다.
국내 자율주행 수준을 해외 주요 업체와 비교하는 것은 비교 수단 및 시점 차원에서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도 여객운송, 화물운송 등 분야에서 자율주행 서비스를 구현 중이며 주요 조사 기관에서 발표한 업체별 경쟁력 수준 결과를 보면 그 실력이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자율주행의 새로운 산업적 관점에서 안정적 정착을 위해서는 오랜 기간 시행 착오와 이를 기다릴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강남훈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회장 nhkang@kama.or.kr
〈필자〉강남훈 회장은 경남 합천 출신이며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와 미국 미시간대에서 행정학,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6회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과·에너지정책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과학기술산업국 고위산업정책관, 산업부 산업혁신과장·산업정책과장·산업정책관·경제국장, 지식경제부 대변인·에너지정책관·자원개발원자력정책관, 대통령실 지식경제비서관,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한국에너지공단 이사장, 인천대·경북대 초빙교수, 민간LNG산업협회 상근부회장등을 역임했다. 지난해 10월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회장으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