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어려운 가운데 혁신적 가치 창출을 위한 기술개발과 보호의 중요성이 어느 때 보다 강조되고 있다. 현재 진행되는 기술 패권 시대는 국가별로 보유한 기술 수준에 따라 시장지배력이 결정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의 안전과 평화를 지키는 국방 분야에 한정해 사용됐던 ‘안보’ 개념이 산업 분야에 확대·적용돼 경제 안보라는 새로운 개념이 설계되고 있다. 다시 말해 산업 경쟁력이 국가 수준의 질서와 안녕에 연계되면서, 기술 협력을 위한 ‘개방’과 기술 보호를 위한 ‘통제’라는 상반된 가치에 대한 조정노력이 요청되고 있다. 이러한 혁신 가치의 창출은 제조공정에 한정된 개선 수준을 넘어 장기간의 쉼 없는 연구개발 과정을 동반한다. 다시 말하면, 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핵심요소는 제품과 서비스 등에 내재화되어 있는 기술이며, 경제 안보라는 새로운 흐름 속에 지속 가능한 연구개발 환경 구축의 중요성은 점점 더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국가·산업 수준의 경제 안보와 함께 개인 수준의 연구자 관점에서는 기존 연구 진실성의 개념이 확대되면서 안정적 연구개발 보안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연구 진실성의 좁은 의미는 연구부정행위가 없는 정확하고 정직한 연구 과정을 뜻하며, 넓은 의미에서는 연구자가 지켜야 할 과학적·사회적 책임과 윤리를 포괄하고 있다(이준석, 김옥주, “연구부정행위에 대한 규제 및 법 정책 연구: 미국 연구 진실성 관리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2006).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최근 연구개발 성과가 국가·산업의 경쟁력 확보 및 안보와 직접적으로 연계됨에 따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연구 진실성의 범주를 ‘연구와 학술 활동에 있어 적절하지 않은 정보교환이나 외국의 내정간섭 등을 조정하는 것’으로 확장해 제시했다(KISTEP, “연구자산 보호 관련 주요국 정책 동향 및 시사점”, 2023). 이러한 확장된 개념을 기초로 연구 진실성은 기존 조작·변조·표절, 부당한 저자 표시, 중복게재 등과 같은 윤리적 내용과 함께, 개인의 이익을 위해 공공의 선(善)을 넘는 위배행위를 제한하고 있다(STEPI, “글로벌 연구생태계에서의 안보와 자율성 충돌”, 2022; KISTEP, “연구자산 보호 관련 주요국 정책 동향 및 시사점”, 2023).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서 주요국가들은 자국의 자원 한계를 극복하고 연구개발의 품질을 제고하고자 국제공동연구 등을 통해 개방형 연구 협력을 활성화하는 한편, 연구개발 과정에서 산출되는 성과물을 보호하면서 연구 진실성을 훼손할 수 있는 요인들을 방지하기 위해 법 제도를 정비하고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KISTEP, “연구자산 보호 관련 주요국 정책 동향 및 시사점”, 2023).
그러나 한국의 경우, 연구 진실성의 범위확대에 따른 환경적 변화 흐름에 비해 연구현장에서의 의식 수준과 제도적 내용이 아직 낮은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세부적으로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을 통해 연구보안을 규정하고 있지만, 연구 진실성 확보를 위한 보안 관점의 통제항목으로만 한정돼 있어, 개방형 연구환경을 고려한 균형감 있는 (자율과 제한) 보안제도 마련이 요청된다. 아울러 연구현장에서 첨단기술 연구개발 과정을 직접 수행하는 연구자 대상의 연구 진실성 관점의 연구보안 개념은 아직 정립되지 않은 상태이며, 불편한 규정으로 한정했다는 점에서 규정과 적용 사이에 거리감이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확대된 연구 진실성의 환경 구축을 실효성에 있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제도의 정비와 연구보안에 대한 본격적 연구 진행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된다.
먼저, 연구 진실성과 연구보안에 관한 공감대 확산 연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연구내용에 관한 부정행위 및 이해충돌 행위가 연구산출물에 대한 무결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규정하고, 연구보안에 관한 인식과 지식, 그리고 행위가 일체화될 수 있는 사회과학적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 일반적으로 의식은 해당 주제에 대한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함께 관련 규정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실제 행위로 연결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형성된다. 따라서 연구자를 대상으로 연구 진실성과 연구보안에 대한 수용성 높은 교육내용 설계와 함께, 기존과는 다른 연구자의 특성을 고려한 지식 전달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아울러 알고 있는 지식이 가시적 행위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연구개발 전문기관 및 연구개발 수행기관에 대한 규정정비도 함께 진행돼야 한다.
다음은 연구 진실성 취지와 개념을 근간으로 연구보안에 관한 진단모형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연구자와 함께 연구 수행기관을 대상으로 연구 진실성이 추구하는 방향을 달성하기 위해서 요청되는 진단영역과 항목을 설계하고,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진단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연구자와 연구 수행기관이 측정된 진단결과를 바탕으로 자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활용 가능한 연구보안에 관한 진단모형에 연구보안 구축을 위한 관리체계와 연계성이 필수적으로 확보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과제다.
마지막으로 연구보안을 시스템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인력의 양성과 기술개발이 필요하다. 연구 진실성은 본래 연구자 스스로 지켜야 하는 기본 덕목이지만 연구자의 이러한 노력을 지원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의 양성이 필요하다. 연구보안에 관한 전문 인력은 보안에 관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보안의 대상이 되는 ‘연구개발’에 대한 이해수준이 높아야 한다. 보안에서 바라보는 연구보안이 아니라, 연구 과정에서 바라보는 보안이 될 수 있도록 차별화된 교육과정 설계와 인력 양성체계 마련이 요청된다. 아울러 안정된 연구보안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물리적·기술적 보안기술 개발이 필요하다. 연구보안에 규정과 부합성을 유지하면서, 개방형 연구환경을 안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연구산출물에 대한 무결성과 책임 추적성을 확보할 수 있는) 특화된 보안 서비스에 대한 고민과 기술개발이 진행될 필요가 있다.
보안 관점에서 연구환경은 보안 산업에서 이제까지 고민해온 환경과 달리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보안에 대한 수용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환경으로, 자율과 제한이라는 가치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울러 연구자의 독립성을 확보해야 하면서도 연구기관의 안정적 관리가 필요하며, 연구산출물에 관한 보안사고에 따른 심각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상태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연구개발 과정에서 중간 산출물이 다른 나라에 유출·탈취되었을 때, 우리나라는 연구개발 과정에서 투자된 자원의 손실은 물론 기술을 매개로 한 제품 또는 서비스에 대한 출시 기회까지 잃어버릴 수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허위나 조작된 연구결과는 미래의 기술발전 방향을 왜곡시킬 수 있으며, 공공의 선과 개인의 이해충돌 문제로 인해 우리는 경제문제를 넘어 안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연구보안 활동이 규정 중심의 통제가 아닌, 연구 진실성 원칙을 바탕으로 경제 안보를 지향하는 문화로 조성되기를 바란다.
장항배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 hbchang@cau.ac.kr
〈필자〉장항배 교수는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사)한국산업보안연구학회 학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4단계 BK21 ‘사이버 물리공간 청정화 연구사업단’ 단장을 수행하면서, 미래 융합 공간에서의 오염요소(기술유출과 탈취, 사이버범죄 등)를 최소화하기 위한 다학제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19년부터 한국공학한림원 기술경영정책분과 일반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