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많은 곳에서 고객경험을 이야기한다. 고객경험이 제목으로 들어간 책만 국내외 3000권이 넘는다. 고객경험에 대한 관심이 늘고, 이를 개선하려는 기업이 다양하게 노력한다. 그러나 고객경험에 관해 ‘경험’ 그대로를 생각하기에는 인지적 함정이 존재한다.
경험하는 순간에서 내린 평가의 합 또는 평균이 전체 경험이라 여기기 쉽지만, 고객은 순간의 경험을 합하거나 평균을 내지 않는다. 경험하는 자아와 기억하는 자아가 다르기 때문이다. 둘을 혼동하면 고객경험을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경험하는 자아는 경험 순간에 몰입하고 기쁨의 정점이나 고통의 깊이를 인식하지만, 기억하는 자아는 전체 연결구조를 어떻게 이야기할지에 초점을 둔다. 때문에 기억하는 자아는 경험에 대한 이야기의 창작자인 동시에 편집자다. 예를 들면 고객에게 “여기에 설치하면 될까요”는 경험하는 자아, “설치서비스가 어땠습니까”는 기억하는 자아에게 묻는 것이다. 기억하는 자아는 경험에 점수를 매기고 이야기를 머리 속에 기록하여 남긴다. 그리고 일상 생활에서 특정한 단서가 주어지면 기억 저편에 경험을 통해 남겨진 이야기를 회상한다.
노벨 경제학 수상자이자 행동경제학자인 데니얼 카너만은 환자의 통증을 측정하는 연구를 통해 경험과 기억의 차이를 설명했다. 먼저 시술 시 1분마다 통증 강도를 0에서 10점까지 점수로 표기하게 하고, 시술 후 한 시간 이내 고통의 총량을 평가하게 했다. 그 결과, 최고 통증과 마지막 통증 정도는 연관성이 있었지만, 지속기간은 연관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긴 시간 동안 통증의 정도가 높았던 사람보다 짧은 시간이지만 통증 강도가 점차 높아지는 환자가 더 고통스럽다고 기억한 것이다. 긴 시간 높은 강도의 통증을 겪은 환자의 경험하는 자아는 고통스러웠지만, 기억하는 자아는 괜찮았다는 것이다. 이 연구가 고객 경험 측면에서 의미있는 것은 고객의 이야기를 결정짓는 것은 상황의 변화, 특징적 순간과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이다.
우리 삶에는 약 6억개 정도 경험의 순간이 존재한다 . 한 달에 대략 60만개의 순간. 그 순간들은 대부분 흔적없이 사라진다. 기억이 그 순간을 말끔히 정리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기억을 소모하고 있는 것일까? 몇 년 전에 일주일간 튀르키예 여행을 했다. 지금까지 여행 중 최고였다. 그런데 그 여행을 약 5분도 안 되는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다. 그때 찍었던 수 백장의 사진을 앞에 놓고 이야기 하면 약 20분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은 일주일이었는데 기억은 길어 봤자 20분이다. 기억하는 자아가 기억의 일부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억하는 자아는 순간을 정리하고 이야기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사실상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앞서 환자에게 다음에 어떤 검사를 받을 것인지 선택하게 한다면 기억 속에서 덜 고통스러웠던 검사를 선택할 것이다. 경험하는 자아는 이 선택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기억하는 자아는 독재자인 것이다. 때문에 고객 경험을 평가할 때는 경험을 늘어 놓고 비교할 것이 아니라 기억들을 놓고 비교해야 한다. 심지어 미래를 생각할 때에도 미래를 경험될 것이라는 시각이 아니라 현재에서 예측하는 앞으로의 기억으로 봐야 한다.
고객은 브랜드와 순간을 경험하고 기억한다. 경험하는 자아는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고객의 의사결정권은 기억하는 자아에게 있다. 그리고 기억하는 자아의 만족을 조절하는 것은 시간이 아닌 경험 강도와 경험의 끝이다. 이제 고객 경험을 경험하는 자아에 초점을 둘 지 ,기억하는 자아에 초점을 둘 지 결정해야 한다.
이현정 HS애드 DX실장 mktbridge@hsa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