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교육부 “공정한 입시 실현” VS 현장 “기준 모호·혼란 가중”

‘수능 킬러문항 공개’ 파장
국영수 480개 문항 중 22개
자문위원회 운영…핀셋 제거
‘높은 독해력’ ‘과도하게 복잡’
주관적 정성평가 수식어 지적

# 교육부가 ‘사교육 이권 카르텔’을 정조준하고, 수능 킬러문항 출제를 배제해 학부모의 사교육 부담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킬러문항과 관련해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을 자극하는 입시학원의 부조리를 적발하고, 학원의 도움 없는 ‘공정한 입시’를 내세운 것도 궁극적으로는 사교육비 경감이 목표다.

그러나 킬러문항의 선정 기준이 오답률과 같은 정량 지표가 아닌 정성적 판단에 의해 이뤄진 점, 킬러문항 없이 변별력을 갖춘 문제 출제 방법이 여전히 모호한 점 등으로 인해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연도별 사교육비 추이
연도별 사교육비 추이
“킬러문항, 사교육에서 문제풀이 기술 익힌 경우만 유리”

교육부는 26일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하면서 2021학년도 수능, 2022학년도 수능, 2023학년도 수능, 2024학년도 6월 모의평가에 출제된 국어, 영어, 수학의 480문항을 분석한 결과 22개 문항이 초고난도 문항, 이른바 ‘킬러 문항’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킬러문항을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으로 사교육에서 문제풀이 기술을 익히고 반복적으로 훈련한 학생들에게 유리한 문항’으로 정의했다.

국어의 경우 교육과정 범위에 있지 않은 학술적·전문적 용어들이 반복적으로 들어감으로 인해 독해를 방해하고, 시간을 많이 사용할 수 밖에 없어 사교육에서 문제풀이 기술을 익힌 경우 유리한 문항들이 지적됐다.

교육부가 킬러문항으로 지적한 2023학년도 수능 국어 15번 문항은 “국어 독해력보다는 ‘기초대사량, 상용로그, 비례를 나타내는 그래프, 최소제곱법, 클라이버의 법칙’ 등에 대한 배경지식의 차이와 수학적 이해 능력이 문제 해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문단의 내용이 분절적으로 제시돼 과도한 추론을 요구한다”고 지적받았다.

2022학년도는 ‘변증법’이 지문으로 출제된 국어 8번, ‘기축통화’가 지문인 13번 문항은 과도한 인문·경제적 배경지식이 요구되고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아 고난도의 추론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2022학년도 수능 수학 미적분 29번 문항. 해당 문항은 대학에서 배우는 ‘테일러 정리’ 개념을 활용해 해결할 수도 있어 과도한 심화학습과 선행학습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됐다.[교육부 제공]
2022학년도 수능 수학 미적분 29번 문항. 해당 문항은 대학에서 배우는 ‘테일러 정리’ 개념을 활용해 해결할 수도 있어 과도한 심화학습과 선행학습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됐다.[교육부 제공]

수학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로 여러 개의 수학적 개념을 결합해 과도하게 복잡한 사고, 고차원적 해결 방식을 요구하는 문항을 킬러문항으로 꼽았다. 특히 대학 과정을 선행한 학생은 출제자의 기대와는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학생 사이 유불리를 발생시켰다고 지적했다. 2022학년도 수능 미적분 29번 문항은 대학에서 배우는 ‘테일러 정리’를 활용할 수 있으며, 기하 30번 문항은 ‘벡터의 외적’을 활용할 수 있는 문제다.

염동렬 충남고 수학교사는 “대학개념을 사용해 좀 더 배운 학생이 원활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형평성에 큰 문제가 있다”며 “이런 건 배제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영어 과목도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내용이어서 영어를 해석하고도 이해가 어려운 문항, 과도하게 길고 복잡한 문항을 사용해 해석이 어려운 문항 등이 지적됐다.

교육부는 킬러문항 핀셋 제거를 위해 현장 교사를 중심으로 ‘공정수능평가 자문위원회’(가칭)를 운영하고 독립성이 보장되는 ‘공정수능 출제 점검위원회’를 신설한다고 밝혔다. 수능 출제위원의 비밀유지의무를 강화한다. 현재도 금지된 출제위원 참여 경력 노출 금지 조항에 더해 일정기간 수능 출제 관련 강의·집필·자문 등 영리행위를 금지할 방침이다.

주관적 기준·모순된 발언…현장 혼란 가중 지적

교육부가 앞으로 배제되는 유형의 킬러문항을 공개했지만 현장의 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킬러문항 판단 기준이 정성평가에 집중된 만큼 ‘높은 독해력’, ‘과도하게 복잡한’ 등의 수식어가 주관적이고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교육부는 그 동안 킬러문항 배제 방침을 밝힌 후 “킬러문항 배제가 쉬운 수능, 이른바 ‘물수능’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러나 2021학년도 수능에서 킬러문항이 수학에서만 1문항 출제된 데 대해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물수능이라고 얘기했던 시기”라고 답했다. 킬러문항이 없어 쉬운 수능이 됐음을 인정하면서도, 킬러문항 배제가 쉬운 수능은 아니라는 모순적인 주장을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또한 초고난도 문항 없이 변별력을 갖출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어 수험생들의 혼란이 가중됐다. 새로운 출제 기준의 결과는 9월 모의평가에서나 확인 가능하다. 심민철 인재정책기획관은 “사교육업계에서 불안심리를 유발해 이것이 맞다, 아니다 혼란을 부추기는 면이 있다”며 “9월 모의평가에서 구체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의 자기부정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그동안 교육부와 평가원은 매해 수능이 끝난 후 브리핑에서 교육과정 내에서 출제가 이뤄졌다고 강조해왔다. 이제 와서 ‘공교육에서 배우기 어려운 킬러문항’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커지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김연석 책임교육정책관은 “(교육부의) 입장이 바뀐 게 아니라 교육과정 안이야 밖이냐가 아닌 공교육에서 다룰 수 있느냐나 기준이 됐다”고 답했다.

최다현 기자 da2109@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