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챗GPT 등장은 정보기술(IT)업계를 넘어 세계적으로 혁명적 충격을 가했다. 이후 갓 반년이 지났는데 생성 AI 기술과 정책, 담론이 쉼없이 쏟아지고 있다. 기존 빅테크 기업은 생성 AI 기술 도입에 분주하고 많은 스타트업은 AI 생태계 확장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 그런데 AI 생태계에 반시장적 독점 문제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최근 챗GPT 개발사 오픈AI가 맞춤형 AI챗봇을 판매하는 앱 스토어를 구축한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5월 ‘플러그인’이라는 이름으로 외부 기업 서비스 연동을 시작한 것에 이어 본격적으로 챗GPT 서비스 플랫폼 변신을 추진 중인 것이다.
자사가 개발한 대규모 언어 모델로 자사 플랫폼에서 서비스를 확대하는 것이 왜 문제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오픈AI가 자사 서비스만을 위해 언어 모델을 독점하고 타 기업의 모델 접근과 공급을 제한한다면 그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20여년 전 MS에 내려진 시장 독점 판결을 보자. 당시 미 법원은 MS가 지배적 시장 점유율을 무기로 마음대로 가격을 책정하고 있다고 판결했다. 빅테크 기업은 기술 전환기 초기에 가격을 낮춰 경쟁자를 고사시키고 시장 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다. 그리고 본격적인 기술 보급 확대 국면에서는 독점 구조 속에 가격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하나의 독점 빅테크 기업은 번영할 수 있지만, 공정한 경쟁과 협력에 기반한 기술 생태계는 황폐화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미 법원은 MS의 반시장적 독점 행태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이제 생성 AI를 계기로 다시 맞이한 기술 대전환기의 중심에 우연치않게 MS가 큰 지분을 확보한 오픈AI가 있다. 애초에 오픈AI는 사명에서 드러나듯 오픈소스로 대규모 언어 모델을 개발하고, 모두가 이를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열린(Open)’ AI 연구 비영리재단으로 출발했다. 이에 부응한 스타트업은 오픈AI 모델에 기반해 제각기 특색있는 제품을 개발, 서비스하며 AI 생태계를 넓혀 왔다.
그러나 오픈AI는 더 이상 오픈이 아니다. MS 투자 이후 오픈AI는 영리화 움직임을 본격화했다. GPT3부터는 예전과 달리 모델 공개에 대해 소극적으로 변화했다. GPT4의 경우 모델 구조와 작동 원리에 대한 설명마저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자체 플랫폼인 챗GPT를 핵심 서비스로 부각시키고 플러그인과 앱스토어까지 추진중이다. ‘오픈’을 신뢰했던 스타트업 생태계를 잠식하려는 움직임이나 다를 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스타트업과 경쟁할 의향은 없다”던 오픈AI의 과거 입장은 여전히 유효한 지 의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최신 모델인 GPT4는 기업이 유료로 이용할 수 있는 API를 제공한다. 그렇지만 기업은 GPT4를 이용하고 싶어도 원하는대로 이용할 수 없다. 오픈AI가 타 기업에 GPT4 공급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오픈AI는 자사 서비스에 GPT4 접근 트래픽을 우선적으로 공급하고 남는 트래픽만을 파트너사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오픈AI에 적지 않은 모델 이용 비용을 지불하고 있음에도 오픈AI가 자사 서비스에 우선적으로 쓰고 남긴 트래픽에 의존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실제로 현재 약 2만여개의 고객사가 오픈AI의 API 트래픽 제한으로 인해 서비스 제공에 문제를 겪는 중이고, 수개월 동안 트래픽 제한에 묶여 있다. 오픈AI는 이제 ‘오픈’이 아닌 ‘독점’으로 나아가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AI 기술 패권을 둘러싸고 각 나라와 기업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을 경계하는 유럽은 AI 기술 규제 입법을 추진중이고, 우리 정부도 국내외 동향을 주시하며 각종 정책과 입법 추진에 분주하다. 국내 빅테크 기업은 대규모 언어모델 상용화와 서비스 고도화를 위해, 스타트업은 생성 AI라는 기술 대전환기에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 모두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처럼 치열한 노력과 경쟁은 기술 발전과 시장 확대로, 나아가 소비자 이익과 인류적 진보로까지 이어질 것이다.
단,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경쟁은 공정해야 하며, 독점과 반시장적 행태는 발을 붙여서는 안된다. MS가 반독점 철퇴를 맞지 않았다면, 우리가 경험한 IT 혁명과 모바일 혁명이 가능했을까? 오늘의 생성 AI 기술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이제 정부는 빅테크 기업의 AI 모델·서비스 결합과 독점 문제에 대해 진지한 성찰과 정책적 대안 모색을 시작해야 한다. 해외 빅테크 기업이 기술 사다리를 걷어차고 한국 IT 생태계를 초토화시키고 기술 패권을 장악하는 첫걸음이 여기서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빅테크 기업 역시 더욱 적극적으로 스타트업들과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빅테크의 기술력과 스타트업의 참신한 서비스가 결합되면 한국의 AI 경쟁력은 더 크게 세계 속으로 뻗어갈 것이다. 아울러 우리 빅테크 기업이 자칫 작은 한국 내수 시장에만 몰입해 오픈AI가 저지르고 있는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를 소망해본다.
이세영 뤼튼테크놀로지스 대표 noah@wrtn.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