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약 89분가량 이어진 통신사 서비스 장애로 유무선 인터넷부터 음식점 결제까지 전국의 점심시간이 일시에 멈췄다. 조사 결과, 원인은 최신 설비 교체작업 중 발생한 네트워크 경로 설정 오류로 밝혀졌다. 당시 사건은 인터넷이 얼마나 우리 일상과 연결돼 있는지와 하나의 오류나 부주의가 전국 시스템을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것, 나아가 보안 조치와 투자 중요성을 일깨운 사례였다.
인터넷은 1969년 미국 국방성의 알파넷(ARPANET) 이후 54년, 국내에선 1982년 서울대와 전자통신연구소(KIET) 간 SDN(System Development Network) 연결을 기준으로 41년이 흘렀다. 미국 주요 대학간 운영되던 인터넷은 2021년 이후 50억 인구를 연결하는 삶의 공간이 됐다.
디지털전환 물결은 국민경제, 금융·행정 등은 물론 국가안보까지 이르렀고, 정부도 모든 데이터가 연결되는 '디지털플랫폼'에서 국민·기업·정부가 함께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와 기회를 창출하고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인터넷이 있었기에 이러한 변화가 가능했다.
인터넷은 전송제어프로토콜(TCP)/인터넷프로토콜(IP)이라는 규약에 기초해 발신자와 수신자간 정보를 주고받는 통신이다. 인터넷은 특정 IP주소를 찾아가는 경로를 알려주는 장비인 라우터와 BGP(Border Gateway Protocol)라는 통신규약, 도메인이름에 해당하는 IP주소를 알려주는 도메인네임서버(DNS) 등 수많은 절차와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들(ISPs)의 네트워크를 거쳐 광속으로 세계를 연결한다.
글로벌 조사업체에 따르면, 인터넷에 연결된 사물인터넷(IoT) 장비는 2020년에 200억대를 넘었고,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센서는 1조개를 상회한다. 인류가 파피루스에 기록을 남기면서부터 생산한 데이터는 총 20엑사바이트(EB)인데, 인터넷이 일상화된 2010년 이후, 인류는 매일 3EB의 데이터를 생산하고 있다. 1제타바이트(ZB)는 1024EB를 의미하는데, 2025년까지 인터넷을 통해 검색·유통될 수 있는 데이터는 175ZB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또, 2025년이 되면 한사람이 하루에 여러 디지털기기를 통해 인터넷과 상호작용하는 횟수가 평균 5000회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인터넷이 만들어 낸 디지털세상은 그야말로 '빅뱅'하고 있는 것이다.
1조개의 센서와 200억대의 IoT장비로 매일 3EB의 정보를 처리하고, 다양한 기기를 통해 175ZB에 이르는 데이터를 매일 5000회 이상 이용하는 50억 인구의 생활을 안전하고 무결하게 제공하는 기반이 곧 인터넷이다.
그러나 인터넷은 개발 초기부터 50억 인구, 수조 개 센서·장비와 연결할 것을 예상하고 개발되진 않았다. 따라서 여러 취약점과 위협에 노출되기도 하고, 신기술 출현 등 끊임없는 도전에 직면해 왔다. 또 랜섬웨어, 디도스 등 악의적 공격행위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인터넷 경로 정보 오기(誤記) 등 단순 실수로 인한 인터넷 장애 및 사고가 발생해왔다.
더욱이 대부분 국민 일상이 인터넷과 연계되고 주요 국가서비스가 인터넷을 통해 제공되는 디지털 전환 및 디지털플랫폼정부 시대를 맞이해 그 기반이 되는 인터넷과 그 인프라 등 소위 '크리티컬 인프라스트럭쳐'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세계 각국은 인터넷 안정성 제고를 위해 분주하다.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한 유럽연합(EU) 연구계에선 인류번영을 위한 공공재로서 인터넷을 인식하고, 인터넷과 그 인프라의 안정성 확보를 위한 노력을 각국 정부는 물론 시민단체 등에 요구하고 있다. 또 전문기술그룹들에선 안전한 인터넷 경로설정을 위한 BGP 모니터링, RPKI(Resource Public Key Infrastructure) 확산을 강조하고 있다.
올해 3월 미국의 '국가 사이버안보 전략'에서도 인터넷 기반 보호를 위한 BGP의 취약점 개선 필요성이 강조됐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세계 각국은 인터넷 중요성을 절감, RPKI 등 인터넷의 안정적 운영에 관심이 높아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코로나19 팬데믹을 전후해 일평균 국가 DNS 질의량이 10억건 이상 증가했으며, 초당 평균 4만1000여건의 처리가 이뤄지고 있다. 올 4월에는 1일 질의 최대건수가 무려 51억건에 달했다. 이러한 변화에 맞춰 전 세계 IPv4 주소의 RPKI 적용률은 최근 3년간 2배가량 높아져 43.57%에 이르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RPKI 적용률은 1.48%대에 머무르는 실정이다.
BGP 모니터링이나 RPKI 등의 확산을 위해선 통신사 등 ISP를 포함한 인터넷회선사업자의 협력이 필수다. 안전한 인터넷 기반 구축을 위해 지속적 투자를 유도하고 전문 인터넷운영협의체를 구성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정부의 지속적 관심도 필수요소다. 이는 우리나라 인터넷주소자원 관리기관이자 국가DNS 운영을 전담하는 한국인터넷진흥원의 고민과 숙제이기도 하다.
논어에 '본립이도생(本立而道生)'이란 말이 있다. 기본이 확립되면 여러 가지 길이 생긴다는 뜻이다. 인공지능, IoT, 블록체인 등 디지털 혁신을 가능케 하고, 끝없이 발생할 디지털 빅뱅의 도전을 받아낼 기반은 결국 인터넷이다. 이제는 기본으로 돌아가 인터넷 인프라에 대한 범국민적 관심과 지속적 예산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원태 한국인터넷진흥원장 wtlee@kisa.or.kr
〈필자〉이원태 원장은 서강대에서 정치학(정치커뮤니케이션)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7~2021년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서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국가 미래전략, 국가 정보화전략, ICT 인문사회 융합 등 정책 연구를 수행했다. 2017년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회 부회장, 2018년 한국인터넷윤리학회 부회장, 2019년 한국인공지능법학회 부회장, 2020년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제도혁신단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2019년에는 지능정보사회 규범의 선도적 연구와 정책 공론화 과정의 공을 인정받아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 2021년 1월부터 한국인터넷진흥원장직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