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루먼쇼는 작은 섬에서 행복한 삶을 즐기는 주인공 트루먼의 이야기다. 모든 것이 쇼라고 외치며 떠난 연인을 찾는 여정을 그린다. 그의 도전은 번번이 실패한다. 왜일까? 그는 태어나면서 TV프로그램에 갇혀 모든 삶이 시청자에게 방송되는 존재다. 그의 침실, 집, 거리, 회사 모든 곳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가족, 친구와 지역 주민 모두 배우다. 그는 삶을 선택할 기회가 없었다. 배를 타고 섬을 탈출하던 마지막 장면에서 스튜디오 세트의 벽을 맞닥뜨린다. 고민 끝에 벽에 난 계단과 문을 통해 진짜 세상으로 나오려고 한다. 감독은 세트장으로 돌아가라 윽박지르고 관객은 탈출하라고 외친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선 독재자 빅브라더가 다스리는 오세아니아를 배경으로 한다. 카메라와 마이크를 통해 국민을 감시하는 장치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제안한 파놉티콘은 감옥이다. 간수는 중앙의 감시탑에서 사방으로 내려다보며 감시할 수 있지만 죄수들은 감시탑 안을 들여다볼 수 없다.
데이터가 읽히는 곳에선 통제가 가능하다. 디지털시대는 어떨까. 집을 나서면 엘리베이터, 거리, 지하철, 버스, 직장과 학교, 식당, 상점 곳곳에서 CCTV에 노출되어 있다. 질병통제, 범죄예방을 위해 바람직한 측면이 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비대면 수요 증가로 영상, 보안 산업이 발전했다. 스마트폰 보급으로 녹취가 일상화됐다. 필름 걱정 없는 휴대폰 카메라 등으로 일상이 노출되고 있다. 휴대폰을 손에 달고 사는 한 집안이라고 다르지 않다.
인터넷을 이용한 길, 맛집, 친구 찾기 등 위치기반 서비스는 개인의 위치정보와 취향을 실시간 기록된다. 이메일, 방문장소, 검색내용이 기록으로 남는다. SNS 등 소셜미디어에 남긴 글, 사진, 영상, 좋아요 등 이모티콘도 마찬가지다. 수사기관에 소환된 사람은 죄가 있거나 없거나 휴대폰부터 망치로 부순다.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죄와 사생활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그렇다. 개인 유튜버를 포함한 많은 매체에 의해 사람의 정보가 노출된다. 자발적으로 혹은 누군가에 의해 나에 관련된 글, 사진, 음성, 영상 등 데이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어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SNS에 데뷔하며 데이터화된다. 일거수일투족이 노출되는 시대다. 바야흐로 숨을 곳 없는 유리알 인간이 되고 있다. 인공지능(AI)을 통해 분석하면 성격, 취향 등 본인이 아니고는 알 수 없는 은밀한 데이터조차 찾아낼 수 있다. 과거 정보기관, 수사기관이 인적 물적 비용을 들여 개입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던 데이터가 온라인 클릭 몇 번으로 드러난다. 여기에 GPT 같은 대화형 AI 모델 검색이 가세하고 있다.
공동체 시스템을 통해 데이터를 수집, 결합, 분석, 이용하면 의도와 관계없이 알게 모르게 디지털 독재, 독과점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사생활이 침해되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마음이 읽혀 실질적으로 독재, 독과점과 비슷한 효과가 날 수 있다. 누구나 약점이 있다. 인권주의자도 파렴치할 수 있고 악당도 선할 때가 있다. 그러나 약점이 공개되는 순간 공격과 비난에 취약하고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게 되고 건전한 시민의 역할을 못할 수 있다. 취향을 읽히면 기업의 마케팅에서 벗어날 수 없다.
데이터를 산업화 못하고 사생활에 가두는 한 미래는 없다. 그렇지만 데이터, AI 시대에는 데이터의 양적, 질적 변화와 그 속도를 눈여겨봐야 한다. 과거와 같은 데이터 보호 정책이 통할 수 없다. 데이터를 활용하면서도 사생활을 보호하는 대안을 키워야 한다. 개인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실질 수단도 강화하자. 자유없는 자유를 두려워해야 한다. 그것만이 디지털이 권력, 자본의 도구에서 벗어나 공동체를 풍요롭게 하는 시작이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