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크웜(Lukewarm). 어느 블로그엔 루크와 웜이란 단어가 결합된 것이라고 한다. 이건 어느 정도 맞되 온전히 그렇지는 않다. 굳이 고쳐 설명하자면 이건 오래된 영어 루트웜(leohtwearm)에서 왔다고 한다. 하지만 루트(leoht)는 '옅은'이나 '밝은'을, 웜(wearm)은 '따뜻함'을 의미한다니 어느 블로그의 설명도 맥락에서 그리 벗어난 건 아닌 듯싶다.
혁신의 다른 표현엔 뭐가 있을까. 물론 여럿이겠지만 그 정수에 해당하는 하나만 고르라면 쉽지 않은 질문이다. 물론 저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개중 하나엔 '와해'란 단어가 있을 법하다.
기술 진보의 긴 시간 동안, 단지 종종 예상보다 오래 걸린다는 점을 제외하면, 이것은 종국에 상상했던 것보다 더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우리는 안다. 그리고 디지털은 우리 시대의 그것인지도 모른다. 모른 채 눈감을 수도, 온전히 피할 수도, 그렇다고 한번 해보자며 덤비기도 힘든 이것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에 누군가는 이렇게 조언한다. 디지털이란 걸 먼저 보지 말고 좀 더 익숙한 다른 것에 눈길을 둬보라고 말이다. 바로 우리가 여태껏 해왔던 것, 바로 매일 내가 하고 일, 그 일에서 시작하는 변화라는 것 말이다.
거기다 변화라고 부르기조차 힘겹다면 개선이나 조정, 아니 당신에게 필요하다면 '오늘의 아주 작은 미래'라고 명명하든 당신과 기업에 부담스럽지 않은 뭔가로 말이다.
여기 그런 사례가 있다. 2010년 아마존은 가격 비교 앱을 내놓는다. 누군가 매장에서 제품과 가격을 확인하고 동일한 제품을 아마존 온라인에서 할인 가격에 주문하는 데 이용될 수 있었다.
쇼루밍(showrooming)이라 불리는 이것이 퍼져나가자 매장, 직원, 재고 비용에 허덕이며 고군분투하던 소매점에게 드디어 느리고 고통스러운 죽음이 다가온 듯 보였다. 그리고 베스트 바이가 어느 한 분기에 17억 달러 손실을 본 것도 이즈음이었다.
베스트 바이의 선택은 마치 체념하는 듯도 보였다. 이 위기의 순간에 새 CEO 허버트 졸리는 아마존에 맞서는 대신 고객에게 뭔가 더 나은 것을 제공하면서도 이 골리앗이 따라 하기 힘든 게 뭘까 물어본다. 이건 그를 직원, 매장, 디지털을 결합한 고객 경험이란 것으로 인도한다.
우선, 가격은 아마존이나 다른 온라인 플랫폼에 맞추기로 한다. 그러자니 물류, 재고, 공급망 관리는 한참 더 강화했다. 매장에선 고객이 제품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했다.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배송 뿐 아니라 매장에 들러 픽업할 수 있도록 했다. 이건 그즈음 흔하던 배달품 도난이란 골칫거리를 피하는 가장 확실한 대안이지 않던가.
이 정도만 해놓고 봐도 그간 골칫거리로 생각하던 많은 매장은 대체불가 장점이 됐다. 이들의 25㎞ 동심원 안에 잠재고객 70%가 거주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거기다 한때 중단했던 직원 할인을 도입하고 직원 사기를 높이는데 투자한다. 이렇게 리뉴 블루(Renew Blue)라 불리는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지금 베스트바이가 도전을 온전히 뒤집은 듯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문 닫은 매장도 있었지만 매출도 줄었고 앞으로도 또 다른 위기가 오겠지만 그간 혁신했고 버텨내고 있다. 어쩌면 어느 건전지 광고의 문구처럼 베스트바이는 누구보다 오래갈지도 모를 일이 됐다.
'디지털 와해(digital disruption)'란 물결 앞에 많은 기업의 마음은 녹아내리는 듯 보인다. 마치 큰 마른 우렛소리마냥 다리를 떨게도 하지만 허리 곧추세우고 바라보면 통로가 보인다.
그게 가능하겠냐고 묻고자 하나. 물론이다. 만일 당신이 여지껏 하던 일이 비즈니스라 불리던 것이고, 고객을 위해 변화해 왔다면 말이다.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