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산업의 식량이고 연료입니다.”
1981년 7월 15일. 정부는 이날 반도체공업육성계획을 마련해 전두환 대통령 재가를 받았다. 이 계획은 반도체 강국을 향한 정부의 혁신적이고 담대한 미래 설계도였다.
이 작업은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로 청와대 경제수석실이 업무를 총괄했다. 작업반에는 관련 부처와 산업계, 연구소 등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1980년 12월부터 육성계획 작성을 시작해 이듬해 5월 작업을 끝냈다. 각 부처 실무협의를 거쳐 상공부장관과 과학기술처 장관, 재무부 장관, 경제부총리 등 서명과 국무총리 결재를 거쳐 대통령 재가를 받아 정부안으로 최종 확정했다. 당시 정부 경제부처와 학계 등은 반도체산업 육성책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전두환 대통령의 회고록 증언.
“거시경제를 담당한 경제 부처나 일부 경제학자들은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은 국제경쟁력이 약하기 때문에 투자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과학기술처나 상공부, 국책 연구소 등에서는 우리나라 산업발전을 위해서 반도체 육성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었다. 전자업계도 반도체는 기업과 국가경제의 성장동력 확보라는 차원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전두환 회고록)
오명 당시 경제수석실 경제비서관(전 과학기술부총리)의 회고록 증언.
“당시 반도체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우리는 처음부터 대통령이 반도체에 대해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반도체에 대한 내용을 아예 만화로 만들어서 그것을 보고서로 올렸다. 심지어 반도체 모델을 일본에서 공수해 실물을 가지고 대통령에게 설명하기도 했다.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두 번이나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반도체 기술을 얼마나 빨리 발전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모든 국무위원들은 반도체 공업 육성에 적극 협력하라'고 지시했다. 반도체공업육성계획은 반대의견을 설득하느라 시간이 오래 끌렸다. 그런 논쟁을 벌일 시간에 반도체 개발에 더 일찍 착수했다면 4M D램 개발을 1년여 단축해 미국이나 일본보다 먼저 제품을 내놓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30년 후의 코리아를 꿈꿔라)
이 작업의 실무를 당당했던 정홍식 당시 경제수석실 행정관(전 정보통신부 차관)의 말.
“반도체산업 육성은 1981년 당시 최우선 순위 업무였다. 전두환 대통령 지시로 작업반을 구성해 작업을 진행했고 그 결과물이 '반도체공업육성계획'이었다.”
반도체공업육성계획에는 반도체 공업 육성의 필요성과 제조 과정, 반도체 공업 현황과 문제점, 반도체육성 대책 등을 구체적으로 담았다.
△반도체공업 육성 필요성=반도체는 산업의 식량이고 연료로 선진국의 반도체 무기화 우려가 있다. 반도체는 기업의 국제경쟁력 좌우해 앞으로 반도체 기술 없이는 선진 기업으로 도약하기는 불가능하다. 반도체는 통신과 가전, 컴퓨터, 항공기, 미사일, 자동차, 공작기기, 제어장치 등 각 분야의 필수품이며 연평균 성장률이 14.8%에 달하는 미래 성장동력이다.
△국내 반도체 현황=단순 조립과 웨이퍼 가공 등이 전부였다. 반도체 설계 시설은 전무했고 미국이나 일본 기업에 설계를 의뢰했다. 이에 비해 외국은 반도체 산업을 국가전략산업로 적극 육성했다.
△반도체 공업 육성대책=웨이퍼 가공 분야를 국가 차원에서 국제 비교 우위 품목으로 육성하고 기초 소재를 단계적으로 국산화한다. 생산구조를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고도화하고 논리소자와 기억소자 등은 국책 과제로 개발한다.
△반도체 생산설비 현대화=1980년 현재 25%인 시설 자동화를 1986년까지 자동화 90%로 확대하고 주요 기초 소재도 단계적으로 국산화한다.
△고급인력 양성=회로 설계와 웨이퍼 가공 기술인력에 대한 해외연수를 확대하고 생산기술과 응용기술 분야 해외 우수인력을 유치한다.
△기술개발 자금 지원=1982년부터 1986년까지 기초기술 개발 등에 200억원을 과학기술처 연구 출연금에서 지원하고 민간기업에도 전자공업진흥 기금과 국민투자기금, 기술개발주식회사 자금을 지원한다.
△세제지원 확대=반도체 제조용 시설재와 원자재에 대한 관세를 대폭 인하하고 반도체 제조용 시설재에 대한 관세 감면 범위를 확대한다.
그해 9월 5일.
전두환 대통령은 이날 오전 경북 구미수출산업공단안 구미시 부녀회관 강당에서 무역진흥월례회의를 주재하고 “정부는 반도체산업 육성에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서석준 상공부 장관( 전 부총리)은 이에 앞서 “전자산업을 1980년대 고도산업국가발전의 핵심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특히 반도체를 산업의 꽃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보고했다.
전 대통령은 회의 후 구미수출공단에서 최영구 이사장으로부터 공단 현황을 보고 받고 한국전자기술연구소(현 ETRI)와 한국전자통신(현 삼성전자) 등을 시찰했다.
이와 관련한 일화 하나.
처음 대통령 일정에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시찰은 빠져있었다. 이런 소식을 들은 최순달 당시 소장(전 체신부 장관)이 상공부에 항의 전화를 했다.
“대통령께서 반도체와 컴퓨터 산업을 집중 육성한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반도체와 컴퓨터를 연구하는 국책연구소 방문을 제외합니까”
그날 밤 자정 무렵. 속이 상해 뒤척이는 최 소장 숙소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연구소 직원 전화였다.
“큰일 났습니다. 빨라 연구소로 오셔야 겠습니다.”
연구소로 달려가보니 연구소 주변을 경찰 병력이 삼엄하게 둘러싸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소장실로 들어서니 청와대 경호실에서 나온 경호원들이 안전점검을 하고 있었다.
최 소장의 항의 전화에 대통령 일정에 급히 연구소를 포함시킨 것이다.
전 대통령은 최영구 이사장 안내로 연구소를 방문했다. 최 소장은 대통령에게 반도체와 컴퓨터 개발 현황을 보고하고 연구소 시설을 소개했다.
그해 12월 어느 날. 청와대 비서실에서 최 소장에게 청와대로 오라는 연락이 왔다.
“무슨 일이지? 내가 보고한 내용에 문제가 있었나”
최 소장은 잔득 긴장해 각종 자료를 준비해 청와대로 들어갔다.
최 전 장관이 회고록 증언.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갔더니 대통령께서 반도체 산업에 관한 말씀만 하셨다. 나는 반도체 산업 현실과 전망에 관해 허심탄회하게 보고했다.”(최순달의 삶과 과학이야기)
전 대통령은 최 소장에게 각별히 당부했다.
“최 소장, 반도체는 선진국이 되는데 꼭 필요한 기술이오. 최 소장이 책임지고 반도체 연구를 성공하시오.”
“예, 각하. 그런데 반도체는 부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반도체를 이용한 여러가지 장비나 시스템산업도 중요합니다.”
“알겠소. 연구소 직원들의 애로사항은 없소”“근무 환경이 너무 열악합니다. 연구원들은 연금도 없는 실정입니다.”
전 대통령은 옆에 배석한 김재익 경제수석에게 지시했다.
“김 수석, 앞으로 연구소 연구원들을 잘 챙기시오. 이래서야 연구원들이 어떻게 최선을 다해 연구를 하겠소”
전 대통령의 반도체 공업 육성 의지는 확고했다.
그해 12월 23일.
청와대 경제수석실은 '반도체기술도입 실태와 대책'이라는 보고서를 적성해 대통령 재가를 받았다. 이 보고 내용을 토대로 1982년부터 청와대에 한시적인 비상설 기구로 반도체공업육성추진위회를 구성했다. 청와대가 반도체 육성의 실질적인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 것이다.
위원회는 정부와 연구소, 민간기관 합동 협의화 조정 역할을 하며 위원장은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이 맡고 국내 웨이퍼 가공업체 대표와 한국전자기술연구소장, 한국전자공학회장, 과학기술처 조정관, 사업별 관계부처 실무자 등이며 간사는 상공부 전자전기공업국장이 맡았다.
반고체공업육성추진위원회는 1983년 들어 대통령 비서실장이 위원장인 정보산업육성위원회로 확대, 운영했다. 정부의 야심찬 반도체공성육성계획은 국내 대기업의 반도체 사업 진출 발걸음을 빠르게 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