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편결제 방식 중 하나인 공동 QR규격 추진을 위해 손잡았던 지급결제 업계에서 파열음이 나왔다. KB국민카드가 간편결제에 대해 밴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간편결제 보편화로 수수료 등 카드사 부담이 나날이 커지는 가운데 이 여파가 후방산업까지 확산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했다.
업계에 따르면 KB국민카드는 17개 밴사에 '밴 서비스 위탁업무 변경' 공문을 보내고, 9월부터 간편결제에 대해 그간 지급하던 밴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는다고 통보했다.
간편결제는 삼성페이와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등 스마트폰을 이용해 결제하는 방식이다. 현재 카드사, 밴사 등이 함께 추진하는 공동 QR결제 규격도 여기에 포함된다.
밴사에 보낸 공문에는 간편결제 거래 건 대상 매출전표 수거를 현행 수거·보관하던 방식을 생략하고, 밴사에 주던 전표 수거 수수료도 미지급하겠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KB국민카드 논리는 매출전표 수거·보관이 과거 신용·체크카드 결제 시 본인확인을 위해 하던 절차지만, 스마트폰 간편결제의 경우 생체인증 또는 간편비밀번호로 본인확인 과정을 대체해 매출전표 수거·보관이 필요하지 않아 밴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KB국민카드 관계자는 “간편결제의 경우 스마트폰 처리 과정에서 초기 생체인증 또는 간편비밀번호로 본인 확인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매출전표 수거·보관이 필요하지 않다”면서 “이에 따라 매출전표 수거·보관에 따라 밴사에 지급하던 밴 수수료를 9월부터 지급하지 않겠다고 안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공동 QR결제와 무관하게 이는 모든 간편결제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밴업계는 즉각 반발했다. KB국민카드가 간편결제 건에 대해 밴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으면 밴사는 밴 대리점에 용역비용을 지급할 수 없게 된다. 일례로 삼성페이는 물론 카드사와 밴사가 공동 추진하는 QR결제도 밴업계는 한 푼도 받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밴업계 고위 관계자는 “카드사들이 지급결제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간편결제 방식 중 하나인 QR결제를 함께 추진하자고 하면서 뒤로는 밴 수수료를 주지 않으려는 꼼수를 부린 것”이라며 “밴 대리점의 경우 전표수거 외에도 가맹점 유치, 단말기 유지·보수 등 상당한 역할을 함에도 밴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겠다는 것은 후방산업으로 부담을 전가하려는 의도”라고 토로했다.
카드사와 밴사가 밴 수수료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다만 카드가맹점 수수료 인하로 카드사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일부가 밴 수수료를 줄이거나 없애려고 하다가 밴업계 반발로 대부분 무산됐었다.
국내 지급결제 시장은 해외와 다르게 밴 사업자가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밴사는 카드 승인중계와 전표매입 업무를 대행하고 카드사로부터 수수료를 받는다. 카드사는 밴사로부터 이런 업무를 대행받아 인건비 절감효과를 누리고 있다.
현재 갈등을 빚는 것이 바로 이 수거과정에서 발생하는 밴 수수료다. 가맹점에서 결제가 이뤄지면 매출전표를 밴 대리점이 수거해서 밴사에 보낸다. 이때 밴사는 카드사로부터 받은 밴 수수료 일부를 밴 대리점에 용역비용으로 지급한다. 밴 대리점 용역비용은 건당 30원 수준이다. 초기에는 카드사가 18원, 밴사가 12원을 각각 부담했다. 과거 도산 위기에 처한 밴 대리점을 지원하기 위해 금융당국이 중재한 안이다.
2016년 정부가 무서명거래를 도입하면서 전표수거 등을 담당한 수만개 밴 대리점이 수수료가 없어짐에 따라 줄도산 위기에 처하자 금융당국 중재로 카드사와 밴사가 밴 대리점 용역비용을 보전하는 협약을 맺은 결과다. 다만 현재는 카드사와 밴사 협상으로 부담이 밴사 쪽으로 기울어졌다.
박윤호 기자 yun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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