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발표한 '2023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따르면 물가·고용 등 민생지표가 비교적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3%로 19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물가 상승세가 둔화하고, 고용도 역대 최고 고용률인 63.5%를 기록했으며 이 흐름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MZ세대를 중심으로 이른바 '짠테크' 열풍이 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짠테크'는 '짜다'와 '재테크'의 합성어로 불필요한 소비를 최소화해 재물을 모으는 것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심지어 어느정도 아끼는 짠테크를 넘어 극단적으로 절약하는 '무지출챌린지'까지도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민생지표의 개선을 국민이 피부로 느끼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정부는 '민생경제 안정'을 하반기 정책방향의 3대 중점과제 중 하나로 삼고 있으며, 공정위도 이에 발맞춰 정책을 추진하고자 한다.
국민의 경제활동은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거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공정거래는 결국 민생 안정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공정거래라는 시장의 상식이 지켜질 때 소상공인·중소기업·소비자 등 경제주체들이 시장을 통해 정당하게 제 몫을 배분받을 수 있고 불필요한 부담 또한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공정위가 최근 사교육 시장이나 금융·통신 시장과 같이 국민 삶에 직결되는 분야에서의 불공정거래 해소에 발 벗고 나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공정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거대기업의 독과점 남용 시정이나 재벌 정책 등과 같은 내용일 것이다. 그러나 공정위는 이러한 거시적인 사안에서부터 담합이나 불공정거래행위 시정, 그리고 소상공인·중소기업 및 소비자의 애로를 실질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분야에 이르기까지 민생과 관련한 다양한 업무를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먼저, 국민생활에 불필요한 부담을 주는 시장에서의 반칙행위를 시정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4월 택시호출 시장에서 90% 이상 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카카오모빌리티가 알고리즘을 조작해 가맹택시에 콜을 몰아준 행위를 시정한 바 있다. 이를 통해 보다 신속한 택시 호출이 가능해져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하는 국민 불편이 일정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민생 부담을 가중시키는 가격담합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해오고 있다. 주택건설의 주요 소재인 철근의 입찰담합, 농민들이 구매하는 비닐하우스 필름 및 자동차 선루프 부품의 가격담합 등을 엄중하게 제재해 담합에 의한 가격 인상 문제를 바로잡았다. 공정위는 현재 국민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 금융이나 통신 등 분야에 가격담합행위가 있었는지 조사 중이며, 앞으로도 국민생활에 밀접한 다양한 분야에서 반칙행위를 예의주시하여 신속하게 차단해 나갈 계획이다.
다음으로, 우리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중소기업·소상공인의 공정한 경쟁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6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납품단가 연동제를 도입하는 하도급법이 통과됐다.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어려운 시기를 겪어온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정부는 동 제도가 중소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위 규정 마련 등 제도 안착에 차질이 없도록 준비해 나갈 계획이다.
중소기업의 생존과 직결되는 대기업의 기술탈취 문제에도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기술탈취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의 범위를 현행 3배보다 상향하고 손해액 추정제도를 도입하는 등 제도를 개선하는 한편, 자동차부품·기계 등 기술이 중요한 분야를 중심으로 적극적 법 집행을 추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 국민들 모두가 소비자에 해당하는 만큼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도 민생을 살펴보고 있다. 디지털 경제 시대를 맞이해 새롭게 발생하고 있는 소비자 기만행위인 눈속임 상술, 이른바 다크패턴(Dark Pattern)에 대한 대책을 선제적으로 마련해 4월 당정협의를 통해 발표했다. 후속 조치로 현행 전자상거래법으로 규율이 어려운 다크패턴에 대해서는 법을 개정해 보다 적극적으로 규율하고 사각지대를 해소할 계획이다.
아울러 공정위는 통신 3사가 5세대(5G) 이동통신을 출시하며 실제 속도보다 2.5배에서 20배까지 부풀려 광고한 행위를 제재해 소비자들이 기만적 광고로 인해 불필요하게 높은 통신요금을 부담하지 않도록 개선했다. 또한 '공무원 1위', '최단기 합격 1위' 등을 강조하면서 광고해 소비자를 기만한 교육업체들에 대해서도 엄정하게 대응하고 있다.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사교육 시장을 중심으로 부당광고 행위를 통해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심리를 조장하는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는 데 역점을 둘 것이다.
맹자에 '시민여상(視民如傷)'이라는 말이 있다. 다친 사람을 돌보는 마음으로 백성을 돌보라는 뜻으로, 항상 국민을 중심으로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다. 정부의 모든 역할은 결국 민생을 향해 있고, 국민생활에 보탬이 되는 것이 정부의 최우선 과제다. 공정거래법 제1조도 '소비자를 보호하고 국민경제의 균형있는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공정위의 설립 근거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공정위는 앞으로도 업무를 추진함에 있어 민생을 이정표로 삼아 국민생활에 도움이 되는 분야에 역량을 집중해 나감으로써 명실상부하게 민생과 함께하는 공정거래를 구현할 것을 국민께 약속한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필자〉 한기정 위원장은 서울대 법대 졸업 이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법학 박사를 취득하고, 2004년 이화여대 법과대학 부교수를 거쳐, 2007년부터 서울대 법과대학(현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16년 보험연구원 원장, 2020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 등을 역임했고, 2022년 9월 16일 공정거래위원장에 취임하였다. 위원장 취임 이후 '원칙을 중시하는 합리주의자'로서 공정위의 혁신을 이끌고 있다. 법집행시스템 개선과 함께 공정위 설립 40년만에 조사와 정책을 분리하는 조직개편을 이루어 냈다. 한 위원장은 법의 테두리를 명확하고 합리적으로 설정하고 이를 벗어난 반칙행위는 엄중히 제재함으로써 원칙이 바로 선 시장경제 조성에 매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