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설리트(obsolete). 쉬운 단어는 아니다. 하지만 요즘 부쩍 자주 쓰이는 듯 싶다. '한물간'이나 '구식' 혹은 '진부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거기다 이 단어가 쓰인 가장 유명한 경구는 드러커의 것이겠다. 그는 “이것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진부한 것으로 만들고, 그 결과 오늘의 최신인 것이 내일엔 쓸모없는 것이 된다”고 했다. 물론 여기서 이것은 우리가 지식이라 부르는 것이다.
혁신에도 수많은 원리가 있겠다. 이것들이야말로 혁신이 말하고자 하는 말을 어떨 때는 직설적으로, 다른 때는 유비(類比)란 방법으로 슬쩍 다른 포장으로 나타낸다. 하지만 그 정수를 아는 것으로, 진정 그렇다면 아는 것으로 응용의 묘(妙)는 그로부터 무한하다시피 한다.
가격표란 걸 비즈니스에서 뺄 수는 없다. 그게 제품이든 서비스든 가격표로 흥정은 시작된다. 하지만 이걸 어떻게 다루느냐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주문할 때 붙은 가격표를 우리는 햄버거에 치르는 대가라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 이건 부수적인 것까지 포함된 이용가격에 가깝다. 아이가 놀이공간을 이용하든 와이파이를 사용하건 이것에 따로 비용을 청구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럼 넷플릭스를 보자. 비디오 테이프 하나에 치르던 비용을 구독료라는 것으로 바꾸었고 여기에는 개인추천서비스 같은 것도 포함된 것이다. 네스프레소는 이 반대다. 예전 같으면 커피 원두 한 봉지당 치르던 것을 캡슐 하나 혹은 캠슐이 줄줄이 든 박스당 얼마란 것으로 바꾸었다. 좀 더 세련된 표현으로는 이건 커피가루에 담긴 가능성을 완벽한 커피 한 잔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실상 비행기표도 이런 범주였다. 모름지기 항공권이라 함은 비행기 타고 내리는 과정의 모든 서비스가 포함된 것이었다. 그런데 사우스웨스트, 이지제트, 라이언에어 같은 저가 항공사가 한 것이 이 묶음을 풀어헤쳐서 좌석 따로, 수하물 따로, 여분의 발뻗을 공간 따로, 음식 따로, 마실 것 따로 해체한 언번들링이란 것으로 비즈니스사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럼 이게 끝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디지털 와해에도 이 원리는 여전하다. 많은 이들은 호텔 비즈니스란 걸 에이비앤비가 온전히 바꿨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이 비즈니스를 재편한 것은 우리가 익히 알던 이 언번들링이 것이었다.
쉽게 한번 따져보자. 우리는 예전 여행사에 가서 계약서 하나에 서명하는 것으로 목적지 정하기부터 항공권, 호텔 객실, 투어 서비스까지 한 번에 해치웠다. 여기에 관광지 안내 책자와 여행 꿀팁은 덤이었다. 그러던 이 트래블이라 불리던 것이 지금은 적어도 네댓 개 영역으로 쪼개졌다. 그리고 각각은 누구나 다 알만한 글로벌 디지털 기업들의 배양처가 됐다.
여행사 사무실을 웹페이지로 바꾼 건 OTA라 불리는 온라인 여행사들이다. 그리고 이 명단에는 부킹닷컴, 아고다, 익스페디아, 트리바고, 트립어드바이저, 카약, 홈스테이 같은 다른 이름들이 채우고 있다. 숙박플랫폼인 에어비엔비는 단지 이중 한 구성원일 뿐이다.
우리는 미래를 알기 어렵다 불평한다. 아마 경영자라면 입에 달고 있을 이 불평이 실제 그럴까를 따져보면 종국엔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드러커는 “오늘 최신지식이 내일은 의미 없는 것이 된다”고 했지만 “미래는 이미 벌어지고 있다”고도 했다.
디지털 와해는 새로운 위협일지 모르지만 지금 기업은 모두 조금 다른 와해의 과정을 살아남은 곳들 아니겠나. 물론 불평 많은 경영자들을 위한 변명거리가 없지는 않다. “누구든 변화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단지 앞서갈 수 있을 뿐이죠.”
박재민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jpark@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