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야당의 비협조' 탓에 우주항공청 설치가 지연되고 있다며 야당을 공격한다. 국민의힘 소속 장제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정부가 제출한 법안의 '7월 처리'를 약속해야만 상임위를 열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안타깝다. 국가 우주백년대계는 정쟁의 대상이 되어서도, 흥정의 카드가 되어서도 안 된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사실관계부터 바로잡자. 정부· 여당 주장만 들으면 야당이 우주항공청 설립을 결사 반대하고, 우주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정부 시절부터 당정협의 등을 통해 우주개발전담기구 설립 방안을 논의해왔다. 대통령 선거에서는 '대통령 직속 우주전략본부 설치'를 공약했다. 윤 정부 출범 이후에도 다수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발목잡기 집단의 행보라고 보기 어렵다.
내막은 이렇다. 윤 정부는 우주항공청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외청으로 설립하기로 하고, 4월 6일 '우주항공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런데 법안 제출 이전부터 '과기정통부 산하 차관급 우주항공청'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건 범부처 조정능력을 갖춘 국가 우주정책의 컨트롤타워이지, 단순 행정청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순히 행정력을 강화하고 사업 규모를 확대할 거라면 각 부처의 관련 정원과 예산을 늘리면 될 일이다.
실제 민주당 의원이 제출한 다양한 법안은 우주개발전담기구의 위상을 부처 소속이 아닌 대통령 또는 범부처 위원회 소속으로 명시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우주 정책이 부처 산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필자가 발의한 '우주전략본부설치법'(우주개발진흥법·정부조직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이 위원장인 국가우주위원회 산하에 장관급 우주전략본부를 설치하고, 본부의 정책 조정 결과를 각 기관이 따르도록 해 실질적 조정 권한을 보장했다. 결국 야당의 주장은 '우주청 반대'가 아닌 '제대로 우주청'인 셈이다.
그래서 법안을 발의할 때만 해도 다양한 법안이 건설적 토론을 거쳐 합리적 결론으로 도출되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현실은 반대였다. 정부가 법안을 제출한 지 근 50일이 지나는 동안 법안은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4월~5월 여당 의원들이 MBC 사장 출석을 요구하며 상임위를 보이콧했고, 민주당이 회의라도 열라 치면 과기정통부 장관이 불참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그때 장관이라도 국회에 나왔다면 관련 법안들은 진즉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토론하자. 과기정통부 산하 우주항공청은 한계가 명확하다. 독립된 우주개발전담기구 설립의 필요성은 우주개발 수요의 확대, 국가 우주정책의 영역 확장이라는 배경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앞으로는 연구개발(R&D) 뿐만 아니라 산업, 국방, 안보 등 다방면을 아우르는 국가 우주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따라서 새로 설립될 우주개발전담기구의 핵심 기능은 범부처 조정이 될 수 밖에 없다. 과기정통부 산하 외청으로는 이 기능을 담보할 수 없을 뿐더러, 국가 우주정책이 R&D에 매몰될 우려가 크다.
정부는 그럼에도 강한 행정력을 갖추려면 과기정통부 산하 청을 설립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범부처 조정은 국가우주위원회 위원장을 현행 국무총리에서 대통령으로 격상하면 해결된다는 입장이다. 동시에, 우주전략본부는 자문위원회인 우주위원회 사무국에 불과하므로 실질적 역할을 할 수 없다고 폄훼한다. 행정력을 강화하는 게 핵심이라면, 뭐하러 별도 기구까지 설립하는지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정부의 주장 자체에 모순이 있다. 과기정통부는 청 조직의 우위를 강조하고 우주전략본부를 폄훼할 때는 우주위원회가 자문위원회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청 조직의 미약한 조정력을 보완할 대안으로 '우주위원회 강화'를 거론한다. 우주위원회가 자문위원회에 불과하다면, 이는 미봉책 아닌가. 결국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우주위원회의 성격 규정이 오락가락하는 셈이다. 우주전략본부가 단순 사무국이라는 주장도 곡학아세다. 우주전략본부는 주요 법정계획 수립, R&D 예산 심의·조정 및 성과평가를 담당하는, 실질적 권한과 기능을 갖춘 기구다.
전문가들도 일개 부처 산하 청에 반대한다. 국책연구기관인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지난 해 12월 펴낸 '우주개발 확대에 따른 국가우주개발 거버넌스 개편방안'에 실린 전문가 설문 결과를 보자. 응답자 54%가 “다부처 조정 및 국가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고려할 때, 청보다 상위 조직을 고려해야 한다”고 답했다. 과기정통부 산하 청 조직이 적합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6%에 불과했다. 전국과학기술노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지부(항우연 노조)는 정부의 구상을 두고 “예산과 인력을 좀먹는 좀비”라고 직격했다.
정부의 준비 부족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지난 3월 자체적으로 실시한 공청회에서도 전문가들은 우주항공청의 구체적인 기능과 역할, 조직의 규모와 직제가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정부는 '준비 중'이라는 답변만 반복했다. 그런데 수 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부는 같은 답변을 반복한다. 이쯤 되면 정부가 우주항공청의 상(像)조차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법안만 통과시켜달라는 말은 설계도도 없이 공사비부터 내놓으라는 말과 같다.
무슨 일이든 첫 단추를 잘 꿰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가 우주개발전담기구 설립에 나선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첫 단추를 잘못 꿰면 다음 일은 줄줄이 탈이 날 수밖에 없다. 충분한 토론 없이 밀어붙였다간 걷잡을 수 없는 부작용만 커진다. 많은 전문가들이 정부의 우주항공청 구상을 두고 이대로라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정부가 진정으로 우주경제를 육성할 의지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진지하게 전문가와 국회의 목소리를 경청하기 바란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yuseong0413@daum.net
〈필자〉 조승래 의원은 노무현 참여정부 행정관·비서관 출신으로, 더불어민주당 재선 국회의원이다. 초선 때부터 정책 역량과 조정 능력을 인정받아 이례적으로 교육위원회 간사를 맡았다. 21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간사로 활동하고 있다. 민주당 원내 선임 부대표와 제4정책 조정위원장을 지냈다. 과학기술·정보통신기술(ICT)·게임·문화콘텐츠 같은 미래 먹거리와 일자리, 인재 양성에 관심이 많다. 2020년에 국회 문화콘텐츠 포럼을 만들어 모임을 꾸려 가고 있다. 세계 최초로 구글갑질방지법 입법을 주도하며 '빅테크 저승사자'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