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계통운영체계(EMS)는 국가 전력망 종합관리시스템이다. 발전소와 변전소, 송전시설, 선로별 전력 현황을 365일 실시간 파악하고 제어하는 콘트롤타워로, 인체 신경망을 관장하는 뇌에 비유된다.
한국전기연구원(전기연)과 한국전력거래소(KPX), LS일렉트릭, 한전KDN 등 우리나라 전력 연구와 산업을 대표하는 기관·기업이 협력해 '스마트EMS'를 개발해 구축한다. 10년 전 한국형EMS(K-EMS) 개발 상용화에 이은 또 한번의 대형 EMS 프로젝트다.
전기연은 12일 강원도 용평리조트에서 개막한 대한전기학회 하계학술대회에 동시 행사로 'EMS 전문 워크숍'을 열고, EMS 국산화&운영 10년 성과와 오는 2025년을 목표로 추진하는 '스마트EMS 개발 구축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우리나라는 1979년 처음으로 외산 EMS를 도입해 국가 전력망 관리에 사용했다. 10년을 주기로 새로운 버전을 도입해야 했고, 막대한 유지보수 비용은 물론이고 스마트그리드를 비롯한 자체 전력망 연구개발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이에 정부는 2005~2010년까지 5년간 375억원을 투입해 '전력IT 중대형 전략과제'로 한국형 EMS(K-EMS) 개발을 추진했다. 전기연과 KPX, LS일렉트릭, 한전KDN, 바이텍정보통신이 참여해 세계 5번째로 EMS 국산화와 상용화에 성공했다. K-EMS의 시작이다.
K-EMS는 자동발전 제어, 수요 예측, 예비전력 파악, 발전 비용 계산 등 전력계통 운영 핵심기능과 더불어 최적 조류계산, 발전기 기동정지계획 수립 등 당시로서는 최고 수준의 기능을 탑재했다.
KPX는 K-EMS를 2014년 10월 실제 전력계통에 적용해 현재까지 성공리에 운영하고 있다.
K-EMS 개발은 2003년 미국 북동부에서 발생한 대정전 사고를 계기로 힘을 받았다. 당시 K-EMS 개발 실무를 맡았던 이상호 전기연 전력망연구본부장은 “미국 대정전은 EMS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일어난 인재였다. EMS 자체 개발은 어렵다는 우려를 넘어 우리 현실에 맞는 한국형 EMS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고 설명했다.
국가 전력망은 인체 혈관과 비슷해 어느 한 곳에 문제가 생기면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이를 즉시 발견해 해결하지 못하면 정전을 비롯한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전력망을 구성하는 송전선로는 깊은 산 속을 지나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생겨도 빠르게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K-EMS 개발과 구축, 운영은 다양한 사회경제적 효과를 안겨줬다. 우리나라는 K-EMS 구축 후 지난 10년 동안 운영에서 세계 최저 정전율 국가에 올라섰다. 특히 여름철마다 불거졌던 급격한 냉방수요 상승에 따른 대정전 위험을 크게 낮췄다. 어느새 우리 국민은 정전 발생이 후진국에서 일어나는 일로 인식하고 있다.
전력 하드웨어 수준과 달리 저조했던 전력 소프트웨어(SW)개발 역량을 배가하는 계기도 마련했다. 이전까지 전력 기자재는 대부분 국산화에 이어 수출도 했지만 전력 제어·운영 SW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국가 전체 전력망을 자체 기술로 통합 제어하는 몇 안되는 국가 대열에 올라 있다. 10년 주기 도입 비용 400억원과 연 유지보수 비용 30억원은 더 이상 해외로 나가지 않는다. 수요 예측과 예비 전력을 감안해 불요 발전을 제어하는 자동발전제어, 최적 비용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경제급전, 발전 비용과 최적 조류계산, 안전도 개선 등 전력계통 최적화에 따른 경제 효과는 매년 수천억원으로 추정된다.
'스마트EMS'는 K-EMS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전기연과 참여 기관 및 기업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최신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하고, 지난 10년간 운영 데이터를 토대로 전력계통 파악 분석 제어기능을 고도화한다. 특히 발전 변동성이 커 제어도 어려운 신재생에너지를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관리해 활용도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 10년 전과 달리 현재 신재생에너지가 우리나라 발전용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6%(2만545㎿)까지 늘었기 때문이다. 화력과 원자력에 이어 3위다.
스마트EMS 핵심 기능은 '전력계통 선행평가'와 '최적화 자동발전제어'다. '전력계통 선행평가'는 전력계통 전체를 실제 운영에 앞서 시뮬레이션해 사고 발생을 최소화하는 기능이다. 변동성이 큰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포함해 화력, 원자력 등 에너지원별 발전량과 예측량, 발전(휴전)계획, 정지계획, 부하 예측 등 각종 기반 데이터를 토대로 선행평가를 실시하면 국소 정전, 대정전 등 사고 가능성을 파악하고 예방할 수 있다. 국소 고장 상정, 전압 및 안정도 제약 등 세부 계통 여건을 달리 상정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시뮬레이션도 가능하다.
'최적화 자동발전제어'는 발전·변전 정보, 수요·공급 정보를 토대로 각 발전소 발전량, 변전소 변전량을 분 단위로 정밀 제어할 수 있는 기능이다.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낮으면 원전이나 화력 발전을 늘리고, 신재생에너지가 안정적이면 다른 발전원을 줄일 수 있다.
또 각 변전소 부하 상황에 따라 가장 효율적인 송전로를 파악하고, 고장 등 문제가 발생한 변전소 및 선로를 우회할 수 있는 길을 찾아준다. 1분 단위로 발전과 변전 계통에서 나타난 문제를 감지할 수 있는 'AI 토폴로지 에러 탐지', 신재생에너지 발전과 송전량(부하), 흐름(패턴)을 실시간 예측하는 '재생에너지 부하패턴 추정' 기능도 갖춘다.
김남균 원장은 “K-EMS 10년 운영 결과, 정전 예방을 비롯해 전력 수급 균형 안정화는 물론 경제적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며 “차기 스마트EMS는 급증하는 글로벌 전력 수요에 최적으로 대응하는 솔루션으로 주목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창원=임동식기자 dsl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