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칼럼]한글 보드게임을 키우려면

오준원 젬블로컴퍼니 대표
오준원 젬블로컴퍼니 대표

보드게임은 글로벌 시장에서 사랑받는 디지털 게임의 조상격이자 지금도 매년 5000개 이상 새로운 작품이 매년 출시되며 성장하는 문화산업이다. 보드게임 중 언어를 기반으로 하는 워드 게임(word game)은 대부분 영어 알파벳이 기반이다. 미국·영국 등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국가 입장에서 재미로 즐길 수 있는 영어 게임 수천종이 있다는 것은 문화 확산 측면에서 큰 강점이다.

영어에는 애너그램이라는 개념이 있다. 애너그램이란 '듣다(Listen)'라는 단어의 알파벳을 재배치해 '조용한(Silent)'과 같이 다른 뜻을 가진 다른 단어로 바꾸는 글자놀이를 의미한다. 애너그램은 학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기원전 4세기 혹은 6세기부터 시작됐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오랜 언어 문화다. 그래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단어의 알파벳 위치를 바꿔 다른 단어를 만들어보는 개념은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고 익숙하다.

또한 영어는 알파벳이 일렬로 나열되는 방식으로 표기가 되는 특성 때문에 크로스 워드 퍼즐이 잘 발달될 수 있는 형태다. 이를 활용해 1913년 아서 윈이 크로스 워드 퍼즐을 처음 기고하면서 크로스 워드 퍼즐의 역사가 시작됐다.

한글은 보드게임으로 발전하기 어려웠다. 그 이유는 영어가 보드게임으로 발전했던 장점에서 역으로 찾을 수 있다. 우선 영어의 애너그램이 한글에서는 쉽지 않다. 영어에서는 자음과 모음이 모두 일렬로 나열돼 있어서 알파벳 순서를 바꿔서 생각해보기가 용이한 반면 한글은 초성, 중성, 종성이 하나의 글자로 결합된 형태다.

한글은 각 글자에 있는 초성, 중성, 종성을 다른 글자에 있는 것과 바꿔서 글자를 만들어보는 것에 대한 난이도가 상당히 높다. 그래서 남성을 성남으로 글자의 순서를 바꿔보는 것 정도는 많은 사람들이 해봤지만 초성, 중성, 종성을 자유자재로 바꿔보는 것은 대부분의 한국 사람이 해본 적이 별로 없다.

한국 사회에서 1990년대 후반까지 한자와 한글을 병기해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한자와 한글 병기가 일반적 사회에서 한글로만 된 언어 게임은 반쪽짜리 게임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어려움으로 한글 보드게임을 개발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었다. 깊이 있는 오랜 기간 R&D가 필요할 수 밖에 없다.

젬블로 컴퍼니는 2000년대 중반부터 수년에 걸쳐 한글 보드게임을 만들기 위해 연구개발에 매진해 2010년 '한글 보드게임 라온'을 첫 선보였다. 지금까지 12종 이상 한글 보드게임을 출시했다. 카카오프렌즈, BTS 등 유명 지식재산(IP)과 결합을 통해 해외 한류 팬에게 한글을 전파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국내 보드게임 업계도 다양한 한글 보드게임 출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글은 쉽고 재미있다!' 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콘텐츠를 늘려나가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서 이뤄진다.

이제 게임 저작권을 철저하게 지킬 수 있는 사회 제도적 환경 마련에 나서야 한다. 보드게임은 남녀노소 누구나 쉽고 간단하게 즐길 수 있도록 고안되는 만큼 개발에만 수년의 세월이 걸린다. 막상 출시되고 나면 저작권 침해에 취약하다.

보드게임은 한글의 재미와 우수성을 널리 알릴 수 있는 효과적 수단이자 놀이도구다. 개발을 위해 고생하는 아이디어의 씨앗을 지키기 위해 저작권 보호 강화 또한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오준원 젬블로 컴퍼니 대표 justin@gembl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