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매우 우수'까지 고배…전 정권 지우기에 출연연 기관장 연임 취지 '무색'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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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하던 일이 끝내 일어났다. 지난 기관평가에서 '매우 우수' 등급을 받은 과학기술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기관장조차 연임에 고배를 마셨다. '전 정권 지우기'라는 뒷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는 지난 18일 진행한 제196회 임시이사회에서 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에 대한 재선임안을 심의한 결과, 재적 이사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지 못해 해당 안건이 부결됐다고 밝혔다.

현행 과기분야 출연연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선 기관평가 '우수' 이상 등급을 받은 기관의 장에게 이사회를 거쳐 연임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KIST는 최근 기관평가에서 기준보다 높은 '매우 우수' 등급을 받았음에도 기관장 연임이 불발됐다.

기관평가와 이에 따른 기관장 연임을 기관의 자존심 문제와 연결해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인식 아래, 이번 결정에 불만을 품는 이들도 있다. 실제 한 KIST 관계자는 “KIST는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에서는 대표선수 격인데, 최고 평가를 받고도 기관장 연임이 불발된 것은 옳지 않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런 일이 이번 정부 출범 후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이번 정부들어서인 지난해 7월 김명준 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 박원석 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이 연임 부결 결정을 받았다.

지난 4월에는 박현민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원장 역시 같은 결과였다. 반면에 현 정부 출범 전인 2021년 8월에는 김장성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이 연임에 성공했다.

이들 기관 모두 기관평가 우수 등급을 받은 상태였다. 이번 정부 출범을 기점으로 명암이 갈린 것이다.

전 정부 당시 이뤄진 인선과는 선을 긋는 '전 정권 지우기'라는 뒷말이 나오는 이유다. 더욱이 이전 사례보다 높은 매우 우수 등급의 KIST를 이끈 윤 원장까지 연임 가도에서 탈락하면서, 이런 인식이 확대·강화되고 있다.

과기 출연연 기관장 연임 제도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의견도 반복돼 나온다.

당초 해당 제도는 매우 우수 기관의 장에게만 연임 기회를 줬는데, 2021년 시행령 개정으로 우수 등급으로 완화됐다.

출연연 기관장의 짧은 임기를 보완해, 장기간 이뤄지는 연구개발(R&D) 수행을 장려하는 것이 큰 이유 중 하나다. 기관장 개인에도 좋은 일이지만 기관 운영의 연속성을 부여하고, 대형·장기 과제가 힘을 받는 원동력이 된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시스템이 정권 입맛에 맞춰 작동하지 않는 것”이라며 “애쓰고 또 좋은 성과를 내는 출연연과 기관장이 더 오래 뜻을 펼치게 해줘야 하는데, 이런 식이면 어떤 기관과 기관장이 열과 성을 다하겠느냐”고 말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조승래 의원도 “기관평가 결과도 무시한 채 정권 입맛대로 출연연 원장을 선임할 것이라면 뭐하러 기관평가 제도를 운용하는지 모르겠다”며 “과학기술분야 마저 정치적 편가르기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