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선] R&D예산 삭감 걱정하는 제약바이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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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바이오는 중장기 과제가 많을 수밖에 없는데 이번 윤석열 대통령 지시로 연구개발 연속성이 떨어질까 걱정됩니다.”

“연구개발 과제뿐만 아니라 일반 사업과제 예산도 줄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10% 감축은 무조건 해야 한다는 분위기입니다.”

지난달 28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연구개발(R&D)은 원점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후 제약바이오 업계에도 R&D 예산 한파가 몰아치는 분위기다. 최근 정부는 국가전략기술을 백신 생산기술에 이어 바이오 의약품까지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는 등 바이오 육성 전략에 힘을 실어왔다. 이런 가운데 난데없이 예산 삭감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미충족 의료 수요가 높은 분야의 기초·탐색연구 후보 1만개 중 실제 신약 개발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단 1개 뿐이다. 1만분의 1 가능성을 중소·벤처기업이 온전히 이뤄내기란 정말 어렵고도 어렵다.

이같은 이유로 국가 차원의 제약바이오 연구개발은 유독 장기 과제가 많다. 후보물질 발굴부터 전임상, 임상, 허가, 출시에 이르는 신약 개발 전주기에 걸리는 기간은 평균 10.3년 소요될 정도로 인내를 요한다. 잘못 만든 물건은 수리하거나 폐기해 손해를 감수하면 되지만 잘못 만든 의약품은 사람을 평생 고통에 빠뜨린다. 최악의 경우 생명을 앗아간다. 신약 개발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이유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작년 9월 발표한 '주요국 신약개발 현황 비교·시사점' 분석에 따르면 미국 식품의약국(FDA) 조사 결과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퍼스트 인 클래스(세계 최초 혁신신약) 신약 개발 승인을 받은 국가는 미국 66개, 유럽 25개로 전체 신약개발 중 약 90%를 차지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6개, 중국(홍콩·대만 포함) 2개로 나타났고 한국은 전무했다.

한국은 신약개발 기술 수준도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KISTEP 분석에 따르면 한국 신약개발 기술 수준은 선두주자인 미국의 70% 수준으로 약 6년 뒤처진 것으로 평가됐다. 중국은 2015년 이후 신약개발 투자에 본격 나섰는데 미국의 75% 수준으로 한국보다 신약개발 기술력이 높다고 조사됐다.

올해 범부처 보건의료 분야 연구개발 사업은 1조4690억원 규모다. 정부 전체 연구개발 총예산 30조7000억원에서 약 5%다.

약 10년에 달하는 장기 연구개발 과제는 별도 전문 사업단을 출범시켜 체계적으로 과제를 관리하고 성과 도출에 힘을 쏟고 있다. 사업단이 연구자와 긴밀하게 호흡하니 그동안 연구개발 사업에서 지적돼온 중복 투자, 기관 간 연계 부족 등의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사례도 나온다. 범부처재생의료기술개발사업단의 경우 과제 연구자 현장 애로를 듣고 컨설팅해주는 역할을 스스로 발굴해 이행하고 있다. 범부처국가신약개발사업단은 깐깐한 과제 선정·관리로 정평이 나있다.

한 연구개발 과제 관계자는 기자에게 이같이 하소연했다. “국민 세금으로 연구개발해온 혁신 신약 개발을 '카르텔 격파' 논리로 축소·중단한다면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셈입니다. 신약개발 데스밸리를 뛰어넘기 위한 이어달리기는 계속돼야 합니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