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악랄하게 비방하는 영상, SNS, 댓글이 늘고 있다. 악플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고통스럽다. 변명하지만 또 다른 악플에 빌미를 준다.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다.
맷 맥도널드 감독의 2022년 단편영화 '멜론스'를 보자. 나이젤은 20년 경력의 베테랑 마트 매니저다. 여성고객이 수박 2개를 사며 잘 익었는지 묻는다. 진심을 담아 생김새가 좋고 과즙이 풍부한 최고의 2개를 가졌다고 답했다. 옆자리 남자가 수박에 빗대어 여성고객을 성희롱했다며 사과하라고 다그친다. 매장의 다른 고객도 분위기에 휩쓸려 나이젤을 규탄한다. 그는 해고된다. 그를 막아선 시위대에 말한다. “불공정한 사회를 외면하지 않고 분연히 일어선 당신들의 행동을 존중한다. 그런데 여러분은 미쳤다. 나는 20년간 왕을 대하듯 고객을 모셨다. 그런데 당신들이 나의 모든 것을 한순간에 앗아갔다.” 분노한 그는 수박을 하나하나 바닥에 던져 부순다. 결국 진실은 알려지고 그는 복직한다. 나이젤이 성희롱을 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던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는 그가 화장실에서 누군가를 엿보다가 체포됐다는 모바일 기사를 보여주며 끝난다. 그도 억울한 일을 당한 걸까.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다는 속담이 있다. 분노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에겐 이런저런 이유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관계없는 사람이나 그래도 될 것 같은 사람에게 분노를 표출한다. 이것이 정상일까.
이성진 감독의 미국드라마 '성난 사람들'이 인기다. 배관공 대니는 가족, 금전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마트에서 캠핑용 화로 반품이 거절되자 분노가 끌어 오른다. 식물 인테리어업자 에이미는 남편과 시댁, 사업 매각 문제로 힘든 상황이다. 그들에겐 처음 만난 마트 주차장에서 사소한 시비가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추격전을 벌인다. 목숨을 걸고 보복에 보복을 거듭한다. 보복을 결정하는 짧은 순간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현대인의 분노를 대신하는 듯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그들은 왜 서로를 분노의 대상으로 결정한 걸까.
문화비평가 르네 지라르의 독특한 해석을 보자. 욕망은 잉여가치를 통해 충족된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거래가 아니고 무언가를 남겨 이득을 보고 거래하는 것을 선호한다. 여기서 빈부격차가 발생한다. 명품은 원가에 비해 엄청나게 높은 값에 팔린다. 그 잉여가치가 욕망이다. 그 욕망은 나의 욕망이 아니라 부자, 연예인 등 상류층의 욕망을 모방한다. 빈부격차와 욕망이 관리되지 못하면 폭력으로 연결된다. 공동체가 위기에 처하면 극복하기 위해 희생양이 필요하다. 희생양은 희생되더라도 다른 폭력을 유발할 가능성이 적어야 한다. 이방인, 전쟁포로, 짐승, 여자나 아이 같은 약자 등이 선택된다.
정보통신이 발달된 사회는 대부분 선진국이다. 성장이 정체되면 원하는 일은 풀리지 않고 빈부격차는 커진다. 분노의 원인을 직접 제공한 그들에게 분노를 돌려주긴 쉽지 않다. 그런데 온라인에는 언제든 쉽게 접속할 수 있다. 익명도 가능하다. 명예훼손 등 법의 한계를 넘지 않으면 어떻게든 분노를 표출하고 싶어진다. 건전한 비판을 위한 표현물은 악플이 아니다. 근거 없는 공격성 비방이 악플이다. 약자를 돕는 행동이라는 가면을 쓰기도 한다. 정치인, 연예인, 장애인 등 반격에 나서기 어려운 사람을 대상으로 하면 더욱 거칠다. 무력한 일반인에 대한 악플도 예외는 아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분노 원인을 찾아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희생양을 찾아서도 안된다.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공익활동, 스포츠, 게임 등 건전한 출구를 찾아야 한다. 심리상담 등 사업도 양성화해야 한다. 디지털 시대엔 마음의 여유를 쌓아두는 작은 공간이 다양하고 많아야 한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