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내린 집중호우 이후 잠시 공방을 멈췄던 여야가 수해 책임론을 두고 다시 격돌하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은 충북 오송 궁평지하차도 사건을 인재로 규정하며 정부·여당을 향해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아울러 야당 차원의 재난방지 예방 패키지 입법도 추진한다. 반면에 원내지도부를 중심으로 수해 봉사활동을 진행한 국민의힘은 정부 책임론에 선을 긋는 분위기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4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 정부는) 위기를 각자도생에 맡기는 위기 관람 정부”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위기관리 대응에 실패했다는 입장이다. 이 대표는 “정치의 가장 큰 역할은 국민의 삶과 안전을 지키고 더 나은 삶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심이나 있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무능하고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또 궁평지하차도 침수를 인재로 규정했다. 이 대표는 최고위원회의를 국회 본청에서 취재진과 만나 “궁평지하차도 침수는 막을 수 있었던 인재다. 관리 책임에 대해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수해로 인한 물가 상승에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 대표는 “수해 피해에 물가 상승까지 겹치면서 국민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집중호우 때문에 물에 잠기고 상추·애호박 등이 60% 급등했다. 육류 가격도 비상”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정부 책임론을 제기하는 동시에 이른바 '재난 예방 패키지법'도 추진한다. 여기에는 △기후 위기를 고려한 재난 위기관리 매뉴얼 정비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수해복구 비용 지원 △재난 사후 대응·예방을 위한 각 기관의 공공정보 공유 △홍수·도로 침수 예상 시 홍수통제소가 지방자치단체·경찰·소방·관계기관 등에 동시 통보 △호우 피해에 대한 지방세 감면 법적 근거 마련 등이 포함돼 있다.
정의당 역시 정부의 책임론을 꺼내는 모양새다. 정의당은 이날 국회에서 긴급 간담회를 열고 궁평지하차도 참사를 중대시민재해로 규정한 뒤 대응 시스템에 대한 전면 재정비를 요구했다. 특히 충북도지사와 청주시장, 행복청장 등에 대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안전보건 확보 의무 위반 여부를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소방과 경찰 등의 책임론도 거론했다. 사실상 윤석열 정부의 재난 대응을 겨냥한 셈이다.
반면에 국민의힘은 원내지도부를 중심으로 수해 복구 봉사활동에 나섰다. 국민의힘은 24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에서 수해복구 봉사활동을 펼쳤다. 이날 봉사활동에는 윤재옥 원내대표와 박대출 정책위 의장, 이철규 사무총장 등 주요 당직자와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과 보좌진, 대변인단, 당원 등 500여 명이 참여했다.
윤 원내대표는 정부·여당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구체적인 책임 소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이번 사건과 관련된 지자체장인 충북도지사와 청주시장 등이 국민의힘 소속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윤 원내대표는 수해 봉사 도중 기자들과 만나 “정부·여당은 모든 재난과 관련한 책임이 당연히 있다”면서도 “개별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안인지는 조사해봐야 판단할 수 있다.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원인에 대해서 발생하는 재난은 그 부분대로 판단해야 한다”
수해 봉사 이전 충북도청에 마련된 궁평지하차도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조문을 마친 뒤에도 취재진에 “국무조정실에서 일차적인 조사를 하는 걸로 안다. 경찰에서도 수사하고 있다”면서 “결과가 나오고 당에서 조치할 필요가 있으면 (그때) 판단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다만 수사기관은 궁평지하차도 침수와 관련해 지자체와 정부 기관 등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검찰 수사본부(본부장 배용원 청주지검 검사장)는 이날 충북경찰청·충북도청·청주시청·행복도시청·충북소방본부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대검찰청 측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사고원인을 명확히 규명하고 엄정한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최기창 기자 mobydi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