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매우 흥미로운 전시회에 다녀왔다. 인공지능(AI) 챗봇에 너의 자화상을 그려달라고 명령하여 얻어진 그림을 다시 사진으로 찍어 작품으로 공개하는 전시회였다. 이 작품을 공개한 안준 작가는 한 생성형 AI에게 '너 자신(yourself)'를 그리라고 명령하면 처음에는 거절하거나 반쯤은 사물이고 반쯤은 인간인 존재를 결과물로 내밀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여권사진', '흰 배경'과 같은 구체적 맥락을 담은 단어를 추가해 명령하자 점점 더 우리가 상상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그려냈고, 그러한 모습에 충격을 받아 작품화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AI와 인간을 구분하는 실험으로 대표적인 것은 튜링테스트가 있다. 1950년 앨런 튜링은 '계산 기계와 지능'이라는 논문에서 굳이 무엇이 계산 기계이고 무엇이 지능인지를 정의하는데 집중하기 보다는, 얼마나 사람과 구별하기 힘든가를 기준으로 AI 우수성을 평가하자고 제안한다. 그래서 이 테스트는 모방게임(이미테이션게임)이라 불리우기도 했다. 상대가 컴퓨터인지 인간인지 미리 알 수 없는 조건에서 컴퓨터와 소통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처럼 느꼈다면 그 컴퓨터는 튜링테스트를 통과한 것이다.
한 대학에서는 ABCDF 식으로 부여하던 학점을 점차 없앨 것이라고 한다. 어차피 줄세우면 AI가 1등일텐데 뭐하러 공을 들여 인간끼리 우열을 가리는 데나 필요한 시험, 과제를 부여하느냐는 것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학생들에게 책을 많이 읽히고 다양한 분야의 교양을 늘리도록 함과 동시에 자기주도적 학습을 통해 전문성을 키우도록 하겠다는 방향이다.
2016년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기기 위해 100만 판 이상의 모의 바둑을 두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인간에게 100만 판을 두며 훈련하라고 하면 아마도 병이 날 것이다. 평생을 두어도 100만판을 두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알파고는 인간을 이기기 위해 먼저 자신과의 대국을 통해 스스로를 단련했다. 다시 말해 AI는 자기주도적 학습을 통해 결국 이세돌이라는 거성을 쓰러뜨렸고, 중국의 커제까지 제압한 후 홀연히 바둑판을 떠나버렸다.
이런 점을 두루 고려하면 AI에 자아가 있느냐는 문제를 가지고 토론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AI와의 소통과정에서 인간처럼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실제로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인간에게 정교한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자아를 갖고 있다는 느낌을 무리없이 받아들이도록 유도할 수 있다면, 실재 여부를 떠나 AI의 자아는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최근 필자가 재직중인 학교에서는 생성형 AI에 일련의 질문을 던져 원하는 답을 끌어내는 '프롬프트' 경진대회를 개최했다. 7~8개 질문을 얼마나 기발하게 작성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렸다. 여기서 1등을 차지한 프롬프트는 엄청나게 복잡한 계산을 요구하는 내용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가장 하기 싫어하는 일 중 하나인,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문안을 대리작성 해주는 AI였다. 연인이 이별로 향하는 과정은 무척 힘들다. 감정의 밑바닥을 박박 긁어 다 소모시킨 뒤에 마지막 이별을 고하는 단계에서는 연필 한자루 들 힘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이 프롬프트에 포함된 표준화된 첫 질문은 상대를 부르는 호칭이었고, 마지막 질문은 상대에게 다시 시작할 여지를 줄 것이냐 말 것이냐 였다.
이제 세상은 우리에게 묻는다. AI에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이냐고. 인간과 인간이 소통할 때에는 답을 찾는데 익숙하지만, AI에는 질문을 찾는데 익숙해지는 삶이 오늘 바로 여기에 있다.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 alohakim@skku.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