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처음으로 편의점에서 감기약을 구매했다. 늦은 밤 감기약이 필요했는데 문을 연 약국이 없어 집 앞 편의점으로 향했다. 부족한 상비약을 점검해 다음 날 아침 약국에서 필요한 약을 전부 구매했다.
편의점 안전상비약 제도 취지는 단순하다. 약국을 이용할 수 없는 급한 상황일 때 가까운 편의점에서 최소한의 상비약을 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기자의 경우도 만약 인근에 운영 중인 공공심야약국이 있었다면 약국을 향했을 것이다. 약사에게 자세한 증상을 설명하고 약을 구매하는 것이 더욱 안전하기 때문이다.
대다수 시민 생각도 비슷하다. 안전상비약 시민네트워크가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편의점에서 안전상비약을 구입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전체의 71.5%였다. 이중 95.7%는 추후에도 편의점에서 약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편의점에서 상비약을 구입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공휴일·심야시간 급하게 약이 필요해서'라는 답변이 68.8%로 가장 높았다. 또 편의점 안전상비약 구입 경험이 있는 응답자 중 62.1%는 '품목 수가 부족해 확대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편의점 안전상비약 제도는 지난 2012년 약사법 개정과 함께 도입됐다. 24시간 운영 중인 편의점에서 해열진통제 5종·소화제 4종·감기약 2종·파스 2종 등의 안전상비약을 판매하도록 허용한 제도다. 약사법에는 안전상비약을 최대 20종까지 지정할 수 있지만 약사회 반대로 10년 째 제자리다. 보건복지부가 주최하는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 회의도 5년째 열리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일부 상비약은 편의점 공급이 중단됐다. 어린이용 타이레놀정 80㎎, 타이레놀정 160㎎은 구매가 어려워졌다. 복지부가 안전상비약 품목 관리에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지부는 하반기 중 공급이 중단된 타이레놀정 2개 품목에 대한 안전상비약 지정 취소와 대체약 추가 지정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다. 상비약 품목 확대까지 논의할 수 있는 자리지만 약사회 반발로 진통이 예상된다.
제도 취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전국에 운영 중인 공공심야약국은 200곳이 채 되지 않는다. 전문성을 갖춘 공공심야약국이 더욱 늘어나면 좋겠지만 현실적인 제약에 부딪힌다. 전국 4만3000여개 안전상비의약품 판매 업소의 존재 이유다. 약국 접근성이 떨어지는 도서·산간 지역, 지방 소도시에서는 상비약 판매 채널이 더욱 필요하다.
대체 상비약 품목 수 확대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빨간 약'으로 불리는 포비돈 요오드액이나 제산제, 지사제, 화상연고 등은 감기약과 같이 가정상비약으로 분류되지만 안전상비약 지정에서 제외됐다. 지역 근거리 상권을 책임지는 편의점의 공적 기능을 인정하고 상비약 의약품 판매를 확대해 소비자 편의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
민경하 기자 maxk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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