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대한민국은 풍비박산 났다. 아무런 경고음도 없이, 그것도 대한민국이 OECD에 가입한 직후 벌어진 일로 대마불사(大馬不死)라고 여기던 대기업의 절반이 사라졌고, 무엇보다 '은행부도'라는 당시로는 이해못할 사태까지 속출했다.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변화시킨 이 사건은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이었다. 한편 누군가의 고통은 누군가의 기회가 될 수 있다. 필자는 M&A라는 용어를 IMF외환위기 당시 처음 들었다.
M&A는 미국 월가에서 시작된 용어로, 기업인수와 합병을 말한다. 현대의 M&A는 변했다. 기업 혹은 자산을 사고, 팔고, 나누고, 합치는 모든 거래로 확장됐다. M&A는 고대로부터 이어져왔다. 화폐 등장 이전 물물교환도 M&A 이며, 로마제국의 정복활동도 M&A다. 물물교환은 현대의 주식 맞교환(stock exchange)과 같을 것이고, 정복은 적대적 M&A라 할 수 있다. 이 둘은 현대 M&A 거래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M&A에 대한 나라별 인식도 제 각각이다. M&A역사가 수백 년 앞선 미국은 M&A는 창업자에게 최대의 보상이며 심지어 젊은이들은 M&A를 위해 창업한다. 이는 통계로도 입증된다. 한국 투자시장의 엑시트(투자회수) 방안은 IPO가 거의 유일한 반면 미국은 M&A가 45%에 이른다. 부연하면 한국 창업기업의 IPO비율은 0.7%에 불구해 투자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 대표적인 인물이 일런머스크이다. 일론은 2000년 전후 창업한 집투, 페이팔 등을 수십억 달러에 매각하고, 스페이스엑스·테슬라모터스 등을 잇따라 설립했다. 즉, 창업-매각-재창업의 에코시스템으로 산업의 재배치와 고도화가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미국이 넘사벽인 까닭은 여기에 있다.
국내 M&A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은 M&A를 기업실패로 보는 시각이다. 심지어는 정당한 엑시트 활동을 온갖 억지로 흠집내기도 한다. 문화가 이렇다 보니 M&A는 점점 음성화되고, 매각시기마저 놓쳐 기업은 영영 회생불능 상태가 된다. 기업의 주인은 주주이다. 특히 상장(上場)은 시장에 명패를 다는 것으로 수만 명 주주가 참여한다. 즉, 기업은 사회적 자산으로 멈춤 없는 성장을 이어가야 한다.
일본의 대표적 M&A플랫폼인 바톤즈(batons)는 이어달리기에서 달리기 주자끼리 주고받는 바톤과 같은 말이다. 한편 바톤터치를 할 때는 정해진 20m 구간에서 해야하며 타이밍이 매우 중요하다. 공교롭게도 이어달리기를 가장 잘하는 국가는 일본이다. 잘 짜여진 팀워크로 올림픽에서 매번 메달을 차지한다. 일본의 M&A플랫폼은 1990년대 등장해 기업은 물론 식당, 편의점, 세탁소까지 거래된다. 바톤즈의 경우 일일 500여건의 신규 M&A정보가 등록된다.
기업이라는 긴 여정은 이어달리기와 같다. 각 플레이어가 자기 구간을 열심히 달려주고, 때가 되면 다음 플레이어에게 바톤을 넘겨준다. 특히 1·3번주자는 직선주로를 2·4번 주자는 곡선주로를 달려야 하는 데 저마다에 기량이 다르다. M&A는 기업 실패가 아니다. 관중은 박수로 M&A플레이어를 보내야 한다.
김태섭 피봇브릿지 대표 tskim@pivotbridge.net
〈필자〉1988년 대학시절 창업한 국내 대표적 정보통신기술(ICT) 경영인이며 M&A 전문가다. 창업기업의 상장 이후 4개 코스닥기업를 경영했고, 시가총액 1조원의 벤처 신화를 이루기도 했다. 특히 반도체 전문가로 그가 저술한 '규석기시대의 반도체'는 대학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전 바른전자그룹 회장으로 현재 언택트 M&A플랫폼 '피봇브릿지' 대표 컨설턴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