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주요 협력사에 판매가 저조한 일부 전기차용 부품 생산량을 최대 20% 감산해달라고 요청했다. 최근 전기차 시장을 둘러싼 잇단 악재로 국내외 판매가 정체되며 애초 예측한 공급량보다 수요가 줄어든 여파다.
6일 자동차 부품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최근 복수의 협력사에 남은 3분기 동안(8~9월) 일시적으로 전기차 일부 차종 부품 생산량을 차종별로 15~20%씩 줄여달라는 내용을 전달했다.
통상 완성차 업체는 연간·분기·월별 단위로 협력사와 차량 생산 계획을 공유해 납품 물량을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한다. 현대차그룹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전기차 수요 증가로 협력사에 계속 증산을 요청해 왔으나 이번처럼 감산 계획을 알린 것은 이례적이다.
현대차그룹이 협력사에 전기차 부품 감산을 요청한 차종은 제네시스 GV70 전동화 모델(프로젝트명 JK EV), 제네시스 GV60(JW EV), 현대차 아이오닉6(CE EV), 기아 니로 플러스(DE PBV EV) 등으로 전해졌다.
가장 큰 감산 이유로는 판매 침체가 꼽힌다. 현대차그룹이 감산을 요청한 차종은 미국 시장을 제외하면 연초에 기대했던 목표치보다 모두 판매가 부진하다. 올해 1~7월 현대차그룹 국내외 전기차 판매 실적을 보면 제네시스 GV60은 2710대로 작년 동기(3937대) 대비 31.2% 감소했다.
출시 1년이 채 안 된 아이오닉6는 7267대로 월평균 1000대가량 판매에 그쳤다. 기아가 택시 등 목적기반모빌리티(PBV) 시장을 겨냥해 선보인 니로 플러스는 국내에서 2290대가 팔려 저조한 실적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현대차·기아 전체 판매 실적이 9% 이상 늘어난 것과 대비된다.
전기차 시장을 둘러싼 잇단 악재도 감산 배경이다.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고금리가 지속되며 상대적으로 고가인 전기차 구매에 부담을 느끼는 소비자가 늘어난 데다 화재 우려와 주행 중 동력상실 등 품질 이슈가 계속 불거졌다. 미국에서는 테슬라와 전기차 충전 방식 주도권을 놓고 경합을 벌이고 있고, 국내에서는 수입 전기차가 점유율을 높여가는 추세다. 신시장으로 삼은 중국이나 일본 판매도 저조하다.
협력사들 사이에서는 매출 감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전기차 시장 성장세를 예상하고 신규 투자해 새 장비를 도입하고 생산 라인을 증설했지만 발주량이 신통치 않기 때문이다.
부품 업계 관계자는 “납품 비중이 80% 이상을 차지하는 현대차·기아의 전기차 감산 계획이 1차 협력사로 공유되면서 2차 협력사까지 줄줄이 영향을 받는 상황”이라며 “1차사보다 자금력이 열악한 2차사는 연초 세웠던 생산 목표와 매출에 차질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현대차그룹은 감산 요청 등과 관련해 “확인해 줄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 밝혔다.
정치연 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