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도 무더위로 무척 힘들다. 그래도 우리 가족은 집에서 버티고 있다. 선풍기를 끼고 산다. 에어컨도 가끔 켠다. 땀이 흥건할 땐 욕실로 달려가 세수를 한다. 지난해 이맘때, 우리 가족은 집을 잠시 떠나야 했다. 서울에 내린 집중 호우로, 아파트 기계실이 침수돼 한밤중에 아파트 전체가 정전됐다. 전기가 끊긴 비 오는 한여름 밤의 아파트는 순식간에 한증막으로 변했다. 수돗물도 나오질 않아 씻을 수도 없었다.
전기는 물과 공기처럼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재가 되가고 있다. 지난해와 올 여름, 우리 집의 유일한 차이는 전기 공급 여부였다. 전기 끊긴 것이 우리 가족이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이유였다. 개인과 가정은 점차 더 많은 전자기기와 가전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국가 경제의 전기 의존도도 커지고 있다. 요즘 한창 뜨는 디지털기술과 이들 기술이 빚어낼 초연결사회는 전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전기 생산은 탄소 배출을 수반한다. 전기 생산에 에너지 자원을 쓰는 데, 이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일어난다. 심화하는 기후 위기는 탄소 배출의 대폭 저감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 우리 인류는 난처한 상황이다. 전기 수요는 점점 커지는 데 탄소 배출은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에너지 빈국인 우리나라는 에너지 안보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2021년 우리나라 에너지 수입의존도는 94.8%, 에너지 수입액은 1359억 4000만 달러였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초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던 상황은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
이러한 삼중고를 극복할 해법은 원자력이다. 원자력은 준국산 에너지다. 또, 24시간 365일 전기 공급이 가능하며, 전기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배출도 매우 적다. 'UN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자료에 따르면, 원자력은 가장 우수한 저탄소 에너지원이다. 발전소 건설·운영·폐쇄 및 해체까지 포괄하는 발전 생애주기 전체를 따졌을 때, 원자력은 kWh당 12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여, 육상풍력(11g)과 함께 배출이 가장 적다. 석탄은 820g, LNG는 490g, 태양광은 48g이다.
우리나라는 생존과 번영을 위해 원자력 이용 확대가 불가피하다. 이를 위해서는 원전산업이 든든하게 뒷받침해줘야 한다. 원전 생애주기 동안 원전기업이 기자재, 기술 및 엔지니어링 서비스를 제때 공급해줘야, 원전 운영자가 원전을 안전하게 건설·운영하고 해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산업 생태계가 크게 훼손됐다. 원전산업 생태계 붕괴는 원전 수출을 물론 가동 중 원전의 안전도 위협한다. 현 정부 들어, 신한울 3, 4호기 건설 재개 등으로 숨통이 트이기는 했으나 여전히 어려운 상태다.
탈원전 정책은 원전산업체 중 원자력공급산업체에 가장 큰 타격을 입혔다. 탈원전 정책기간(2017~2021) 중 매출 추이를 보면, 원자력발전사업자는 2021년 매출이 2017년 대비 9.2% 감소, 원자력공급산업체는 16.7% 감소, 연구.공공기관은 18.2% 증가했다. 인력의 경우, 원자력발전사업자는 3.7% 증가, 원자력공급산업체는 13.6% 감소, 연구.공공기관은 10.6% 증가했다. 원자력공급산업체만 매출액과 인력 모두 크게 줄어, 탈원전 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원전산업체 세부 그룹별로 탈원전 정책 피해 크기가 다른 핵심 원인은 반복적 일감(Recurring Business) 유무였다. 탈원전 기간 중 일감이 꾸준히 있었던 원자력발전사업자와 연구.공공기관은 탈원전 정책 충격이 덜했으나, 신고리 5, 6호 이후 신규원전 건설 중단 및 백지화로 일감이 증발한 원자력공급산업체의 충격은 매우 컸다.
원전산업 생태계 정상화 방안의 핵심은 정부가 우리 원전 기업이 국내외에서 일감을 꾸준히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들 기업이 원전 사업을 재개하고 미래를 위해 과감히 투자할 수 있게, 원전 정책의 신뢰도도 높여 나가야 한다. 또 원전 수출을 꾸준히 추진할 수 있게, 산업구조 개편 등 장기적 추진 기반도 마련해야 한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 jhmoon86@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