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다단계 방식으로 1000명으로부터 1조원대 자금을 모아 국내 8개 상장사 주가를 조작해 천문학적 수익을 올린 충격적 사건이 있었다. 이들은 3년에 걸쳐 해당 회사 주가를 최고가 기준 1740%까지 인위적으로 끌어올렸으며, 투자자 신분을 감추기 위해 장외파생상품인 차액결제거래를 이용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이런 주가조작에는 유통주식수가 적고 시가총액이 작아 소액으로도 시세조작이 쉬운 종목이 동원됐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주식 리딩방 피해 관련 건수도 2018년 7625건에서 지난해 1만8276건으로 2.5배나 증가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유사투자자문업체 수는 2020년 1254개에서 올해 5월 2139개로 70%나 늘었다. 대박 정보를 미끼로 투자자를 유혹하는 검은 그림자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고, 주가조작 사건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주가조작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규모가 작은 상장기업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에는 8월 초 현재 유가증권시장에 835개 회사 949 종목, 코스닥에 1657개 회사 1660 종목 그리고 코넥스에 130개 회사를 포함해 총 2622개 회사 2739 종목이 거래되고 있다. 참고로 세계 최대주식시장인 뉴욕증권거래소에는 3월 기준 1807개 미국기업과 578개 외국기업이 상장돼 있고, 세계 2위인 나스닥에는 미국기업 2765개와 외국기업 864개가 거래되고 있다.
세계 1위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기업 숫자보다 14위인 한국 증시에 상장된 회사가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지속적으로 상장기업을 늘리려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은 상장 관련 규제를 강화해 진입장벽을 높이며 매년 상장기업 수를 줄이며 1996년 8090개였던 상장기업 수를 거의 절반으로 줄였다. 양보다는 질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다.
물론 상장기업이 많은 것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제규모에 비해 너무 많은 기업이 상장되면 당연히 부작용이 따른다. 비유하자면 1000가지 품목이 거래하기에 적합한 규모의 백화점에 2000개, 3000개 상품을 넣는 꼴이다. 주식시장도 백화점과 마찬가지로 주식이라는 상품을 거래하는 시장이고, 수요·공급에 반응한다. 수요에 적절한 공급이 있어야 한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지나치게 많다 보니 극심한 제로섬 게임을 할 수밖에 없다.
주식시장에서는 상장기업을 시가총액에 따라 1위부터 100위까지를 대형주, 300위까지 중형주, 그 이하를 소형주로 분류한다. 대형주는 시가총액이 크고 애널리스트가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주로 규모가 큰 기관 투자자들이나 외국인들이 시장에 참여하고 있어 주가조작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규모가 작고 애널리스트가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소형주들은 그야말로 깜깜이 투자를 할 수 밖에 없고 주가조작 세력에 현혹되기 쉽다.
모든 비상장기업들은 자금조달이 원활해지고 투자금의 회수를 위해 상장을 원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상장이 아니라 실제로 자금조달이 쉬워지고 투자자들이 만족할 만한 엑시트가 가능한 가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상장법인의 유상증자 규모는 7조143억원으로 지난 해 대비 66.8%나 감소했다. 상장기업의 수는 증가했지만 오히려 자금조달은 큰 폭으로 줄었다. 자본시장 상황이 안 좋아진 이유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시장에 너무 많은 상품이 깔려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상장기업 수가 늘면 늘수록 심해질 것이다.
소형주는 자금조달이 어려워지고 투자자의 엑시트가 어려워지면 나쁜 유혹에 빠지기 쉽다. 적은 금액으로도 쉽게 시세조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당국이 불공정 거래 세력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여러 가지 제도나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지만,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인한 근본적 부작용을 막을 수는 없다. 지금은 전쟁보다 기본적인 시장논리를 되새겨야 할 때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hsryou6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