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 11세대 E클래스 미디어 시승회에 참석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수도 빈을 찾았다. 올해 4월 말 디지털로 공개한 후 오프라인에서 신차를 체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빈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다. 온난한 기후와 아름다운 경관은 물론 교통 체증도 거의 없어 신차를 시승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E클래스는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수입 프리미엄 세단이다. 2016년 6월 국내에 출시한 10세대 E클래스는 2019년 수입차 최초 단일 모델 누적 판매 10대를 돌파했고, 지난해 11월 20만대를 넘어서며 신기록을 경신했다. 지난해 기준 한국은 전 세계 E클래스 판매 1위 시장이다.
7년 만에 완전 변경을 거친 신형 E클래스의 키워드는 '전동화' '디지털'로 요약할 수 있다. 전기를 충전할 수 있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모델 성능을 대폭 개선해 전기로만 100㎞ 이상을 달릴 수 있고 인공지능(AI) 기술로 수준 높은 개인화, 디지털화를 구현했다.
먼저 외관을 살폈다. 수십 년을 이어온 클래식 디자인에 현대적 감각이 조화를 이뤘다. 전통적인 3박스 세단 형태의 차체는 짧은 프론트 오버행과 긴 보닛 조합으로 안정감 있는 실루엣을 보여준다. 10세대보다 20㎜ 길어진 휠베이스가 넉넉함을, 보닛 위 파워돔이 역동성을 부각한다.
램프 등 외관 곳곳에 삼각별 모양의 벤츠 엠블럼을 형상화한 디자인 요소를 넣었는데, 실제로 보니 어색하지 않고 잘 어울린다. 차체는 보닛 측면 실링과 바퀴 특수 스포일러, 플러시 도어 핸들 등 공기역학을 고려한 디자인으로 0.23Cd의 낮은 공기저항계수를 실현했다. 새 블랙 패널 라디에이터 그릴과 디지털 라이트도 눈길을 끈다.
실내에서 가장 큰 변화는 3세대 MBUX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다. 벤츠는 신형 E클래스를 개발하며 '스포티' '고품질' '디지털' 세 가지를 콘셉트로 삼았다. 차 안에서 음악과 게임, 스트리밍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엔터테인먼트 경험을 선사한다. 더 지능적으로 진화한 3세대 MBUX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벤츠가 2025년 선보일 전용 운영체제 MB.OS의 선행 버전을 탑재한 덕분이다.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도 풍성해졌다. 벤츠 소프트웨어(SW) 전문가들은 서드파티 앱을 설치할 수 있는 새로운 호환성 계층을 개발했다. 센트럴 디스플레이에서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게임, 브라우저 등 다양한 서드파티 앱을 추가해 이용할 수 있다.
AI를 활용해 차량이 운전자가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편의 기능을 학습하도록 한 점도 주목된다. 벤츠가 이를 '루틴'이라고 정의했다. “실내 온도가 12도 미만이면 시트 히터를 틀고, 앰비언트 라이트를 주황색으로 설정하라”는 루틴을 생성할 수 있다. 생성한 루틴은 “따뜻하게 해 줘”처럼 지정할 수 있다. 아이폰 디지털 키 기능도 제공한다.
옵션으로 제공하는 MBUX 슈퍼스크린은 MBUX 하이퍼스크린의 계보를 잇는 흥미로운 장비다. 센트럴 디스플레이와 조수석 스크린을 통합한 형태로, 실감나는 엔터테인먼트 경험을 즐길 수 있다. 카메라를 기반으로 프라이버시 기능을 갖춰 조수석 탑승객이 주행 중 TV나 영상 스트리밍과 같은 콘텐츠를 볼 수 있다. 또 대시보드 상단 카메라로 웹엑스를 통해 온라인 화상 회의에 참여하거나 사진과 비디오를 촬영할 수 있다.
시승차는 마일드 하이브리드(MHEV) 모델인 E450과 PHEV 모델인 E 300e 4매틱, E 400e 4매틱을 배정받아 번걸아 타봤다. 신형 E클래스는 MHEV 모델과 PHEV 모델로 구성된다. 4세대 기술로 진화한 PHEV 모델은 WLTP 기준 100㎞ 이상의 주행거리를 제공한다. 일상 주행을 전기로만 이용할 수 있는 셈이다.
PHEV 모델은 직렬 4기통 2.0ℓ 가솔린 엔진과 전기 모터를 기반으로 9G-트로닉 변속기를 맞물렸다. E 300e 4매틱은 엔진 최고출력 204마력, 모터 최고출력 129마력으로 정지 상태에서 100㎞/h를 6.5초에 주파할 만큼 넉넉한 힘을 지녔다. 출력과 토크를 더 높인 E 400e 4매틱의 100㎞/h까지 가속 시간은 5.3초에 불과하다. 100㎞/h 속도까지 시승 구간 대부분을 전기로 달렸는데 언제 시동이 걸렸는지 모를 정도로 고요하게 앞으로 나가면서도 매끄러운 주행 질감이 “역시 벤츠”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동력은 전기를 사용하면서도 전기차 단점인 울컥거림은 거의 없다. 시승차는 에어매틱 에어 서스펜션과 리어 액슬 스티어링을 갖췄다. 서스펜션은 운전 조건, 속도 및 하중에 따라 자동 조절해 쾌적한 승차감을 제공한다. 리어 액슬 스티어링은 조향각이 최대 4.5°로 회전 반경을 최대 90㎝까지 줄여줘 유턴이나 좁은 골목길 주행 시 편리하다.
아우토반에서 새로운 첨단 주행 보조 시스템을 체험했다. 속도와 차간 거리, 차선 유지를 넘어 설정 속도보다 느린 앞 차를 만나면 별도 조작 없이 스스로 판단해 자동으로 차로까지 변경한다. 추월 후 다시 원래 차선으로 복귀하는 기능까지 갖췄다. 차량이 도로 위 상황을 파악하고 추월 판단을 내리기까지 굉장히 빠르고 안정적이어서 놀라웠다. 국가별 규제에 따라 국내 도입은 미정이나, 자율주행을 향한 벤츠의 앞선 기술력을 체험할 수 있었다.
벤츠는 시승회 현장에 1947년 처음 출시된 1세대부터 11세대까지 세대별로 다양한 E클래스를 전시했다. E클래스가 그동안 어떻게 진화했고, 앞으로 어떤 가치를 담아내려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100년 이상 자동차산업 선구자로서 혁신 기술을 개발해 온 자부심도 느껴진다. 신형 E클래스는 벤츠의 헤리티지에 첨단 디지털 경험으로 럭셔리 비즈니스 세단의 새 기준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에는 내년 상반기 출시 예정이다.
빈(오스트리아)=정치연 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