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터리가 전기차 시장 성장에 힘입어 순항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 합계는 1조4432억원으로 전년 동기(6058억원) 대비 138.2% 급증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영업이익은 늘었고, SK온 적자 규모는 줄었다.
하반기에도 질주가 예상된다. 글로벌 경기침체 영향으로 전기차 수요 둔화 우려가 있지만, 세계 주요국의 친환경 정책과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첨단 제조 생산 세액공제(AMPC) 혜택으로 수익성 개선이 가능할 것이란 관측이다.
그러나 마냥 '장밋빛 미래'는 아니다. 첨단기술 산업 분야에서 자국 우선주의가 확산하면서 대외적 변수에 대응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대표적인 건 IRA다.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IRA에는 첨단 제조 생산 세액공제(AMPC)가 있어 이득처럼 보인다. 북미에 생산 공장을 보유한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은 상반기 각각 2112억원, 1670억원의 직접적인 혜택을 받았지만 제도의 변동성 리스크가 엄존한다. 이창실 LG에너지솔루션 최고재무책임자(CFO)는 2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미국 정부 상황을 보면 IRA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불확실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북미 완성차 업체는 IRA 보조금을 자신들과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일본 파나소닉이 AMPC 절반을 완성차 업체와 나누겠다고 밝힌 만큼 이같은 요구가 이어진다면 국내 배터리 업체 수익성 감소는 불가피하다.
아울러 IRA 보조금 지급 요건상 배터리 핵심 광물을 조달하면 안 되는 '외국 우려 기업'(FEOC)의 구체적인 적용 범위도 불명확해 기업이 혼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미국 행정부에 FEOC 불확실성 해소를 요구하기도 했다.
국내 이차전지 업계는 유럽에서도 '유럽판 IRA'로 불리는 핵심원자재법(CRMA)과 유럽연합(EU) 배터리법에 대응해야 한다. 이는 유럽 내에서 생산된 원자재 사용 제품에 한해 보조금을 지급, 배터리 자체 공급망을 구축하는 게 목적이다. 아직 법률의 세부 규정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은 데다 폐배터리 관리 지침과 탄소 발자국 등의 규제가 까다로워 대응이 쉽지 않다는 평가다.
브레이크가 없어 보이는 K배터리에는 각종 불확실성이 도사리고 있다. 기업들은 성장세를 이어가기 위해 면밀한 대응에 나서야 한다. IRA와 CRMA 세부지침에 따른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이호길 기자 eagle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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