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례 좀 하겠습니다”…큰 물고기 뒤에 숨어 사냥하는 '주벅대치'

“온난화로 산호초 줄어들수록 이 전략 늘어날 것”

파랑비늘돔 등 초식성 어류 뒤에 바짝 붙어 먹이를 사냥하는 주벅대치. 사진=플리커(doug finney) 갈무리
파랑비늘돔 등 초식성 어류 뒤에 바짝 붙어 먹이를 사냥하는 주벅대치. 사진=플리커(doug finney) 갈무리

카리브해에 사는 한 육식성 물고기가 다른 물고기들의 경계를 받지 않는 커다란 초식성 물고기에 바짝 붙어 몸을 숨기고 매우 효과적으로 사냥하는 사례가 확인됐다.

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영국 케임브리지대 샘 마쳇 박사팀은 이 같은 방법으로 사냥하는 트럼펫피시(주벅대치)에 대한 연구 결과를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산호초 지대에서 진행한 실험을 통해 물고기와 새우를 먹이로 하는 주벅대치가 다른 물고기에 위협이 되지 않는 파랑비늘돔 등을 은폐용으로 활용, 먹잇감에 들키지 않고 접근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람 외 동물에게서 다른 동물을 은폐 수단으로 활용해 사냥하는 사례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로 다른 종이 붙어 다니는 사례는 상호간 이익이 있어 암묵적으로 합의된 경우만 확인됐는데, 이번 사례는 오로지 주벅대치에게만 이득이 있는 특이한 사례라고 연구팀은 평가했다.

파랑비늘돔 등 초식성 어류 뒤에 바짝 붙어 먹이를 사냥하는 주벅대치. 사진=영국 케임브리지대/샘 마쳇 박사팀
파랑비늘돔 등 초식성 어류 뒤에 바짝 붙어 먹이를 사냥하는 주벅대치. 사진=영국 케임브리지대/샘 마쳇 박사팀

카리브해 다이빙숍에서 일하는 다이버들은 주벅대치가 파랑비늘돔에 붙어 헤엄치는 것을 흔히 목격했지만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는 자세히 연구되지 않았다. 이에 연구팀은 실험에 들어가 사냥을 위한 행동이라고 결론 내린 것이다.

먼저 연구팀은 실험을 위해 3D 인쇄로 주벅대치와 파랑비늘돔 모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주벅대치의 먹이인 자리돔의 군락지인 산호초 지대에 설치한 줄에 이 모형들을 달아 움직이며 자리돔들의 반응을 관찰했다.

파랑비늘돔 모형에는 반응하지 않는 자리돔들. 사진=영국 케임브리지대/샘 마쳇 박사팀
파랑비늘돔 모형에는 반응하지 않는 자리돔들. 사진=영국 케임브리지대/샘 마쳇 박사팀
주벅대치 모형을 보고 경계하는 자리돔들. 사진=영국 케임브리지대/샘 마쳇 박사팀
주벅대치 모형을 보고 경계하는 자리돔들. 사진=영국 케임브리지대/샘 마쳇 박사팀

그 결과 자리돔들은 주벅대치 모형만 지나갈 때는 탐색 행동을 통해 포식자를 인식하자마자 산호초로 숨었고, 파랑비늘돔 모형만 지나갈 때는 탐색행동 후 별다른 행동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이어 주벅대치 모형을 파랑비늘돔 뒤에 바짝 설치해 함께 이동시키자, 자리돔들은 탐색행동을 한 후에도 포식자로 인식하지 못하고 숨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마쳇 박사는 “주벅대치가 파랑비늘돔 같은 다른 물고기에 붙어서 헤엄치면 몸이 먹잇감들에게서 완전히 숨겨지거나, 전체적인 형태가 주벅대치와 달라 먹잇감들이 포식자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자리돔들이 종류가 다른 물고기에 대해 이렇게 매우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에 놀랐다”며 “야생에서 볼 수 있는 동물의 이런 행동을 모방하는 실험을 통해 이런 행동의 생태학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이런 주벅대치의 행동은 산호초가 많이 파괴된 곳일수록 더 많이 목격돼 온난화에 따른 산호초 지대 훼손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숨을 암초가 줄어들수록 대용으로 더 크고 피식자들의 경계를 받지 않는 물고기를 선택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캘리포니아 과학 아카데미의 어류학 큐레이터 루이스 로차 박사는 “물고기를 연구하는 생물학자들이 이같은 위장 방법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만, 얼마나 많은 이점이 있는지를 확인한 것은 이번 연구가 처음”이라면서 “아마도 더 많은 예들이 있을 것이지만, 아직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전자신문인터넷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