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을 향한 국민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금융혁신과 포용금융을 앞세워 실천하던 사회적 기대가 잇따른 금융사고로 무색해졌다. 더 이상 기존 제도와 개인 책임에만 기댈 수 없다면 실효성 있는 시스템을 가동해야 한다.
2017년부터 올해 7월까지 금융회사에서 횡령 범죄를 저지른 임직원 수는 202명에 이른다. 이들이 횡령한 금액은 1800억원을 넘어섰다. 연평균 약 259억원의 횡령이 발생한 것이다. 이 같은 금융권 횡령 범죄 중 은행에서 일어난 사건은 83.1%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환수 금액은 보다 충격적이다. 전체 금융회사 횡령액 중 최근 7년간 환수금은 224억 6720만원으로 12.4%에 불과하다. 은행권만 놓고 보면 114억 9820만원으로 7.6% 수준이다. 지난해 총 712억원의 횡령 사건이 발생한 우리은행은 회수 가능 여부가 불확실해 전액을 손실 처리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금융당국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금융당국은 임원별 내부통제 책임제도를 넘어 은행장이 직접 내부통제 시스템 전반을 점검하고, 결과를 보고하도록 요구했다. 각 은행장도 책임을 통감하며 내부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은행장 책임하에 기존 제도의 허점을 발견하는 한편 유효한 시스템을 수립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관련 조직을 정비하고, 기본적인 것부터 지켜나가야 한다. 우리은행과 경남은행의 경우 모두 횡령 해당 직원이 같은 업무를 10년 이상 맡아왔다. 통상 은행이 직원을 3~5년 주기로 순환시키는 조치마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것이다.
내부통제 조직의 힘을 키우면서 대내외 정책을 모니터링하고, 시스템 기반 내부통제 체제를 가동해야 한다. 더불어 실효성을 높이려면 내부통제에 있어서도 장기적으로 디지털 전환을 기반으로 한 혁신 기술을 활용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디지털 혁신이 금융 서비스 곳곳에서 적용되고 있는 만큼 인공지능(AI), 데이터 등을 활용할 수 있는 방향도 점차 검토해 볼 수 있다. 특히 거액의 횡령과 부정을 적발하는 데 데이터가 적극 활용될 수 있다. 대용량 데이터 분석을 통해 부정 및 오류 식별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상징후 조기 발견에도 도움이 된다.
AI를 기반으로 한 지능형 CCTV 등의 도입도 검토해 볼 만하다. 관련 직원의 이상 행동 등을 감지하거나 평소와는 다른 행동 패턴을 사전에 확인할 수 있다. 사각지대까지 감시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은행의 노력이 중요하다. 금융당국의 철저한 감독 아래 각 은행이 내부 통제 관련 제도를 보완하고, 감시체계부터 조직문화까지 스스로 바꿔 나가야 한다.
정예린 기자 yesl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