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는 디지털 심화 시대 새로운 디지털 질서 정립을 위한 글로벌 어젠다 마련에 힘쓰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뉴욕대에서 열린 디지털 비전 포럼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 중심부를 관통하는 디지털 변화를 수용하면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차원의 디지털 질서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5세대(5G) 이동통신, 클라우드컴퓨팅, 사물인터넷(IoT) 등 디지털 기술이 놀라운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제 인류는 산업이나 일상에서 단순히 디지털의 도움을 받는 수준이 아닌 디지털과 공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디지털 심화 시대를 맞이했다.
디지털 기술 혁신은 플랫폼 기반 경제 확산, 자동화를 통한 인간 능력의 증강,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 제공, 메타버스 기반 가상세계 확장을 통해 새로운 가치와 기회를 창출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취약계층 차별, 경제·사회적 불평등 고착화, 민주주의 위기, 사회갈등 증가 등 우려도 존재한다.
키오스크를 예로 들어보자. 최근 인건비 상승과 비대면 문화 확산으로 지난해 국내 키오스크 시장 규모는 3년 전과 비교해 2.4배, 요식업 분야에서는 17배 늘어났다. 키오스크로 소비자는 정보를 간편하게 파악해 빠르게 서비스를 제공받고, 사업자는 효율적 인력 운영과 함께 소비자와 감정 다툼을 피하게 됐다. 그러나 고령층의 64%는 키오스크 주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키오스크의 85%는 휠체어를 탄 채로는 이용할 수 없다고 한다. 기술의 발전이 디지털 취약계층에게는 오히려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는 단순히 생활의 불편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디지털 심화 시대 디지털 활용 역량은 곧 직업 경쟁력이 된다. 디지털 격차가 소득과 경제력 격차로 이어지고, 결국 국민 삶의 불평등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다. 그동안 디지털 격차 해소 정책의 주된 관심사는 저소득층, 장애인, 농어민, 고령층 등 취약계층 디지털 접근성 확대와 활용성 개선에 집중돼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동일계층 내부의 격차 해소 고민과 함께 북한이탈주민, 다문화가정과 같이 새롭게 등장하는 취약계층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 전 국민의 디지털 역량 함양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은 2021년부터 국내 주요 학회와 공동으로 '디지털 대전환 메가트렌드 연구'를 수행하면서 디지털 전환의 파급효과, 미래전망, 미래전략 등을 분석·도출했다. 특히 미래 시나리오 연구에서 다수의 국민과 전문가가 디지털 대전환의 바람직한 미래상으로 '디지털 공동번영사회'를 꼽았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디지털 공동번영사회는 디지털 기술과 서비스 혁신을 추구하면서도, 혁신의 혜택을 소수가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골고루 향유하는 사회를 말한다.
디지털 공동번영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선도적 혁신을 위한 규제개선 및 공정한 경쟁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디지털 격차 해소를 통한 공정하고 평등한 기회 보장과 사회안전망 구축을 포함한 새로운 질서 체계 수립이 시급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새로운 디지털 정립을 위한 사회적 논의와 공론화는 매우 중요하고 시의적절하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도 윤석열 정부의 새로운 디지털 질서 정립이 성공하도록 관련 연구를 통해 적극적으로 지원해 나갈 것이다.
배경율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jbae1122@kisd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