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1909~1943)는 1933년 소련 권력투쟁에서 패배하고 추방된 트로츠키에게 거처를 제공했다. 그들은 논쟁했다. 시몬 베유는 공산주의 관료가 악덕 자본가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권력의 속성은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다수를 빙자한 소수 지배라는 것이다. 권력은 외적방어, 질서유지를 통해 다수를 보호한다며 납세, 국방 등 의무를 국민에게 부과했다. 민주주의가 발전했다. 권력이 국민의 생명, 신체와 재산을 함부로 해치지 못하게 됐다.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가 진행되며 국민은 각성하고 역량이 커지며 요구도 증가했다. 권력은 국민의 다양하고 복잡한 요구를 들어주기 어려워졌다. 어떻게 했을까. 국민의 권리가 국가 이외에 다른 국민(기업, 개인)에게도 미치게 체계를 개혁한다. 누군가 건강권을 위해 다른 누군가 흡연권을 제한해야 한다. 건물에서 흡연을 금지하고 개인은 흡연할 곳을 잃는다. 별도의 흡연실을 만든다. 국가를 향해야 할 불만이 국민간 갈등으로 치환된다. 새로운 권리를 만드는 것도 반드시 옳은 것만은 아니다. 다른 누군가의 권리를 막거나 새로운 의무를 지도록 하기 때문이다. 갈등 원인이 된다.
조선왕조까지 신분제 사회다. 사람을 철저히 차별했다. 일제강점기 36년은 어떠했을까. 권력이 왕과 양반에서 일본과 친일파로 바뀌었을 뿐 백성에게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런 상태론 독립을 위한 힘을 결집하기 어려웠다. 식민지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선 독립이라는 단일 목표를 향해 백성이 달려가게 해야 했다. 신분제 타파로 평등 인프라를 확보해 단합을 이뤘고 독립을 공동목표로 성취했다.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를 빨리 이뤄내기 위해서도 평등이 중요했다. 신분 제약이 없으니 열심히 하면 뭐든 이룰 수 있다. 성장을 하면 많거나 적게 과실을 나눌 수 있었다. 성장이 정체되며 분배되는 과실이 줄었고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공동 목표가 흔들렸다. 혁신도 소수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으로 오해를 받았다. 성과를 내지 못하는 정부의 정책과 조정능력에 대한 불신도 커졌다. 작은 차별에도 갈등이 격렬해졌다.
주차 다툼, 층간 소음, 일조권 또는 조망권 분쟁, 교권을 둘러싼 대립 등 권리와 권리가 맞닿은 곳에서 끊임없이 분쟁이 생긴다.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하니 경계선에서 다른 이의 권리와 부딪힌다. SNS 등 소셜미디어, 메신저, 온라인 게시판 등 언제 어디서나 접속할 수 있는 공간이 디지털이다. 남과 비교하고 온갖 불평, 불만을 쏟아낼 수 있는 장치를 제공한다.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불안감과 피해 의식이 커진다. 혁신을 둘러싼 갈등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기득권과 끊임없이 부딪힌다. 디지털 시대 갈등은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온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전염병처럼 퍼진다. 국경도 없다. 갈등과 관계없는 사람도 이해관계를 따져 편을 만들며 갈등을 키운다. 진실이 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게 이로우면 진실이고 불리하면 거짓이다. 정치쟁점으로 만들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책임 소재를 다투며 많은 사람이 다친다.
갈등을 조정하는 합리적 과정도 보이지 않는다. 갈등을 조정하는 정부와 법원의 조정, 중재, 재판은 오히려 갈등과 불신을 키우는 과정으로 바뀐다. 고소·고발이 난무한다. 최종 결론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원칙을 세워야 한다. 충돌하는 권리의 가치가 다르다면 생명이 재산에 우선하듯 큰 가치의 권리를 지켜야 한다. 물론 가치가 낮은 권리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대안이 있다면 찾아야 한다. 집회는 통행을 방해하지만 최소한의 통행로를 만들어 줄 수 있다. 최종 법률 판단이 내려지기 전엔 지나친 권리 행사를 멈춰야 한다. 갈등은 기술과 사회 발전에 따른 정상적 과정일수 있다. 양보와 배려의 문화 확립만이 디지털 시대를 살린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