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면 무선 충전된 전동칫솔로 양치질하고 휴대폰으로 거실 무선 스피커 음악을 재생한다. 그 다음 태블릿PC를 켜 다운받은 신문기사를 읽고 영상통화로 부모님께 안부를 전한다. 버스탈 때는 스마트워치로 요금을 결제하고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유튜브 영상을 시청한다. 이러한 일상이 가능한 이유는 전파를 이용한 무선통신기술 덕분이다.
전파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두 가지 뜻이 있다. 첫번째 전파(電波)는 전하의 진동 또는 전류의 주기적 변화로 인한 전기장과 자기장으로 구성된 파동이다. 두번째 전파(傳播)는 파동이 매질 속을 퍼져 나가는 것을 뜻한다. 이 전파(電波)가 전파(傳播)되는 현상, 즉 정보를 가진 전파가 공중을 가로질러 멀리 떨어진 곳에 전달되는 무선통신과 관련한 학문분야를 전파공학이라고 한다.
오늘날 전파공학에 기여한 과학자를 꼽자면 전기의 아버지 패러데이, 전자기학의 아버지 맥스웰, 주파수의 아버지 헤르쯔, 그리고 무선통신의 아버지 마르코니 정도를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전파공학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2010년 미국에서 이와 관련된 논문이 발표된 적이 있다. 결론은 전파공학 발전에 기여한 과학자가 워낙 많아 객관적으로 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무선통신을 실용화해 엄청난 산업발전을 이룬 마르코니가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다. 마르코니는 이탈리아 과학자로 1897년 영국에 '송신 임펄스 및 신호 관련 장치의 향상방법' 특허를 등록하고 같은 해 자신의 기술 가치를 인정해준 영국에 마르코니사를 설립해 선박 통신사업을 시작한다. 1901년 대서향 횡단 무선통신에 성공해 장거리통신 가능성을 입증했고, 그 공로로 1909년 노벨상을 수상한다. 1912년 타이타닉호 침몰에서 마르코니의 무선전신 덕분에 전체 탑승자의 30% 정도가 생존하게 된 사실은 마르코니의 상업적 성공에 기여했다.
1919년 '무선전신과 전화에 사용하기 위한 반사판' 이라는 미국 특허는 오늘날 국방, 우주, 민간분야에 널리 사용되는 반사판 안테나, 스텔스기술을 비롯해 최근 5세대(5G)·6G 통신분야 신기술인 메타구조, 재구성 지능형 표면(RIS) 기술의 시작이 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마르코니가 1933년 한국을 방문한 적 있다. 당시 '위인 말코니를 맞으면서'라는 제목의 신문 사설이 실렸다. 당시 내용을 발췌해 보면 “우리는 문화사상에 혁혁한 공헌이 있는 진객 말코니를 맞는다. 우리 청년계에도 제3의 말코니 출생을 열망한다” 등 흥미로운 구절이 담겼다. 무선통신의 가치가 문화교류에 있고, 교류의 주도권을 갖기 위해 조선의 마르코니를 기대하는 간절한 열망을 엿볼 수 있다.
최근 반도체 인력 부족으로 계약학과가 만들어 지는 것처럼 1990년대 이동통신사업자 중심으로 전파공학인력 양성을 위한 학과들이 만들어졌다. 그 결과 1996년 국내개발 CDMA 이동통신 세계최초 상용화, 2009년 LTE 단말기 세계 최초 상용화, 그리고 2019년 세계최초 스마트폰기반 5G 상용서비스 개시 등 성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인기분야에 밀려 2021년 이후 전파공학 단독으로는 신입생 모집이 전무한 실정이다. 역설적인 것은 앞으로 다가올 6G 통신은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차, UAV, AI, 위성, 레이다, 로봇 등이 융합된 형태로 구현될 것이며 기반기술로서 전파를 이용한 무선통신기술이 매우 중요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학생이 전파공학분야를 외면한다면 6G 분야에서 우리는 그동안 지켜온 선두자리를 내줘야 할지도 모른다.
대학은 학생의 눈높이를 맞추고 흥미를 갖도록 새로운 교수법, 교과과정을 개발해야 하고, 정부는 국민의 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지원과 인력양성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산업계는 대학의 연구와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 협력하고 인재양성을 지원하는 산·학·관 협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마르코니가 세상을 떠난 다음해인 1938년 매일신보에 마르코니 특집기사가 실렸다. 그 마지막 문장은 “전파의 이용범위는 앞으로 더욱 무한할 것이다”로 끝난다. 85년 전 혜안은 지금도 유효하고 대한민국은 제2의 마르코니 등장을 기다리고 있다.
홍익표 국립공주대 스마트정보기술공학과 교수(한국전자파학회 정보이사) iphong@kongj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