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의 발전소는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원에 따라 각기 다른 특징을 갖고있다. 전력생산가격, 원료 수급의 용이성, 탄소를 비롯한 오염물질 배출 규모, 전력계통에 대한 부담, 전력수요에 맞춰 즉각적으로 출력을 조정할 수 있는 유연성 등 각각의 장·단점이 뚜렷하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탄소를 비롯한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친환경적이나 전력 생산이 날씨에 따라 유동적이라 원하는 시간에 전력을 생산하기 힘들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반면, 원자력은 무사고를 가정하면 저렴하게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으며, 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발전소 건설과 폐기물 처리에서 주민 수용성이 매우 낮고 한번 사고가 나면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때문에 안전 및 사회적 갈등비용을 감안하면 저렴한 전력원인지 의문이다. 또한 원전은 24시간 일정하게 전력을 생산해야 하기 때문에 전력수요에 유연하게 대처를 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석탄은 전력생산 비용이 저렴해 그간 전력생산에 있어 가장 높은 비중을 가진 발전원으로 사용됐다. 그러나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한다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기 때문에 탈석탄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액화천연가스(LNG, Liquefied Natural Gas)는 탄소를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지만 석탄발전소에 비해 60%가량 더 적게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등 친환경성에서 우위를 가지고 있다. 또한 전력수요 변화에 따라 신속하게 전력생산을 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다만, 전력생산 비용이 높다는 것이 단점이다.
때문에 특정 에너지에 지나치게 의존해 전력을 생산한다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며, 과학적인 분석과 실현 가능성에 맞춰 각 발전원의 비율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당연하게도 이는 장기적인 계획이 필수이기 때문에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세워온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조기 수립을 추진하고 있는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에서 신규원전 4기 이상이 구축된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집권 이후 원전비중을 여실히 높인 10차 전기본을 2023년 1월 13일 발표한 지 불과 1년도 되지 않아서다. 스스로 세운 10차 전기본이 문제가 있다고 자인한 것이다.
현재 한빛원전 1호기당 용량이 1GW인 점을 감안하면 최소 4GW가 추가되는 것이다. 기존 10차 전기본에서 계획된 2023년부터 2036년까지 원자력 정격용량 증가량 5.6GW에 버금가는 용량이 11차 전기본에 추가되는 셈이다.
10차 전기본 역시 윤석열 대통령의 집권 이후 원전확대 기조로 작성됐다는 점에서 원전용량 최소 4GW 증가는 급진적인 변화이며, 이로 중장기 전력계획에 혼란이 우려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상당하다.
전체 전력생산 전원 믹스에서 원전 비중이 증가하면 재생에너지, LNG, 수소 등 다른 에너지를 사용하는 발전소들의 비중이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각 발전사업자들도 원래의 계획을 변경하거나 폐기하는 등 전력시장의 혼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윤석열 정부는 11차 전기본에서 전력수요 증가에 맞춰 적정한 전원 믹스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원전 확대라는 결론부터 미리 내려놓고 전기본을 짜 맞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11차 전기본에 참여하는 인사들의 성향을 보면 편향성을 우려하는 전문가들의 시각도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11차 전기본 계획수립이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두고 합리적인 수준을 넘어 진영 간 대립을 더욱 격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때문에 원전이 과도하게 확대되면 발생할 문제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비판이 전기본 수립과정에서 수용될 지 우려된다.
원전추가에 따른 전문가들의 가장 큰 우려는 전력 수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경직성이다. 보통 전력수요는 오후 2~3시를 전후해 최대 수요를 기록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다가 산업시설이 멈추는 저녁이 되면 수요가 가파르게 하락한다. 이러한 전력 수요 그래프가 오리를 닮았다 해서 '덕 커브(Duck Curve)' 현상이라 부른다.
그래서 낮 동안에는 전력을 많이 생산하고 밤에는 전력생산을 줄여서 전력수요와 공급을 일치시켜야 한다. 전기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미달될 경우는 물론 초과될 경우에도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전은 24시간 내내 일정하게 전력을 생산해야 하기 때문에 수요에 맞춰 공급을 조절할 수 없다.
전력수요에 즉각적으로 공급을 맞추지 못하는 경직성 전원의 성격은 재생에너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글로벌 대기업들이 2050년까지 제품 생산 등에 있어 재생에너지를 100% 사용한다는 'RE100' 캠페인을 선언한 만큼 재생에너지의 확대는 수출중심의 한국경제를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하며, 윤석열 정부 역시 이를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때문에 전원믹스에서 재생에너지 확대가 상수인 상황에서 원전마저 추가로 늘리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방침은 자칫 경직성이 증대돼 전력의 수요와 공급을 맞추지 못하는 위기로 이어질수 있다.
물론 이에 대한 해결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재생에너지가 수요 이상으로 생산될 때 전력을 저장하고, 수요가 증가할 때에는 저장된 전력을 공급하는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재생에너지 설비에 맞춰서 보급하면 경직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10차 전기본에서도 2036년까지 최소 29조원에서 최대 45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집행해 ESS보급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 한전의 적자가 200조원을 넘어선 상태에서 최대 45조원에 달하는 ESS 보급 비용을 한전이 감당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를 봤을 때 ESS 보급을 정부 예산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ESS 확대없이 원전까지 확대한다면, 향후 전력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가 악화될 위험이 크다.
또 하나는 송전선로의 문제다. 원전은 상당한 양의 냉각수를 사용하기 때문에 해안가에 지어져야 한다. 그런데 전력 수요처는 수도권이기 때문에, 원전을 추가하려면 수도권까지 전력을 이어줄 대규모 송전선로를 건설해야 한다.
그러나 송전탑에 대한 주민수용성은 매우 떨어지며, 보상문제 등으로 원래 정부계획보다 지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례로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의 경우 당초 완공시점보다 10여년 가량 늦어질 예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력 전문가들은 원전으로 대표되는 중앙집중형 전원이 아닌 분산형 전원을 강화하는 것이 전력시스템 안정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저탄소 친환경 에너지 시대에서 대한민국의 전력정책은 이념의 충돌이 되어서는 안된다. 중립적인 전문가들의 논의를 통해 최적의 전원믹스를 확정해야 한다. 11차 전기본에서 원전을 추가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전문가들에게 강제해서는 객관성을 상실한 정치적 행위가 될 것이다.
홍정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waytohong@naver.com
〈필자〉 홍정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서울대 경제학 학사 졸업 이후 석·박사과정을 수료한 경제전문가다. 현재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과 법률사무소 로스토리 대표로 활동했다. 21대 총선에서 경기 고양시병에 출마해 당선, 국회에 입성했다. 21대 국회 초반에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활동하는 등 산업과 경제 관련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했다. 변호사, 경제학박사, 융·복합 금융전문가, 벤처 최고경영자(CEO)라는 다양한 이력을 쌓았다. 당내에서는 정책위원회 부의장, 원내대변인 등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