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의 미리 가 본 미래]〈87〉디지털 ESG의 대두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이슈가 대두되기 시작한 지도 벌써 일정 기간이 지났다. 이 과정에서 ESG 특성도 상당한 변화가 유발됐다. 초기 ESG는 착한 기업이 주도하는 일종의 캠패인이자 기후환경을 걱정하는 국가의 국제연합(UN) 기후협약, 교토의정서와 같은 일종의 선언 수준에 불과했다. 최근엔 반드시 지켜야 할 규제가 됐고, 이는 실천과 동참이 필요한 수준으로 올라섰다.

ESG는 이제 기업이 발 빠르게 대응하고 해답을 찾아야 할 과제가 됐다. 이러한 과제에서 먼저 성과를 내는 기업이 실제 산업 경쟁력을 갖추는 구조로 변모했다. 움직임은 ESG 세부 내용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수소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기업 간 협업 구조나 실제 ESG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론으로 디지털 ESG가 급부상하는 상황이 예가 될 수 있다. 또 사람이 아닌 제품에도 디지털 형태 여권을 부여해 해당 제품이 만들어지고 폐기되는 전 과정이 어느 곳에서 전개되는지 확인할 수 있는 프로세스가 도입되고 있는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ESG가 단순 선언에서 벗어나 실질적 구현을 위한 대안 모색 단계까지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국내 중소기업은 ESG에 대한 대안을 찾지 못한 상태로 보인다. 중소·중견기업 입장에선 ESG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조사해보면, 사실상 ESG경영이 무엇이고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 것인지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 대기업 요구로 이른바 '액션'은 취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비용이나 인프라, 전문인력 등 부족으로 인해 어려움을 호소하는 상황이다.

중소기업 또한 ESG 경영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중소기업이 ESG를 도입하기엔 금전적·인력적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다. 중소기업이 전문경영이 아닌 가족경영으로 운영하는 회사 비율이 높은 것도 ESG 경영을 실현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업종별로 ESG를 받아들이는 정도도 크게 다르다. 상대적으로 정보기술(IT) 업계 내지 젊은 세대 비중이 높은 직종에선 ESG에 대한 인식이 높은 데 반해, 제조업에선 ESG 경영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는 회사도 있을 정도다.

이러한 국내 중소기업 상황은 원청업체라 할 수 있는 대기업의 또 다른 고민거리가 되기 시작했다. 해외에서는 ESG를 단순 선언을 넘어 실질적 규제화를 시작한 상황에서 원청업체가 협력업체 ESG 현황까지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현재 이러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BMW,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 등 독일 자동차 3사가 한 자리에 모여, 자동차 생산에 관련된 모든 경제주체를 벤더 프리(vendor free) 디지털 네트워크로 연결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이를 통해 하청업체뿐만 아니라 관련 협·단체들을 하나의 디지털 생태계에서 실시간 연결하겠다는 내용을 제시한 것이다.

이들이 디지털에서 대안을 찾은 이유는 우리 중소기업, 그리고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관계에 커다란 시사점을 던져준다. 가장 먼저 시간적·비용적 문제로 인해 ESG를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중소기업 상황에서는 ESG 관점에서 회사 관리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대안을 디지털에서 찾은 것이다. 대기업 역시 실시간으로 수행되는 제조 현장 내용을 가장 쉽게 모니터하고 이를 기반으로 하청업체와 협력할 수 있는 대안이 디지털임을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ESG 그 자체가 기업의 궁극적 목적은 아니다. ESG는 기업에 대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고객 가치를 실현, 기업이 지속가능할 수 있는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시작된 것이다. ESG를 구현하는 데 있어도 비용편익을 비교할 수밖에 없으며, 효율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ESG 구현 방법 역시 디지털 ESG로 귀결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