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에서 1~5일(현지시간) 열리는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23은 사실상 대한민국과 중국 가전업계 간 대전이었다. 밀레, 보쉬 등 유럽 기업이 오븐, 인덕션, 냉장고 등 주방 가전에 주력하면서 종합 가전 차원에서 최대 관심은 우리 기업과 중국 기업의 제품 경쟁력 비교였다.
올해 IFA에는 유독 중국 기업이 주목을 많이 받았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지난해부터 IFA가 다시 오프라인 전시를 시작했지만 중국 기업은 당시에도 자국 폐쇄정책 탓에 제대로 참가하지 못했했다. IFA 2023이 코로나 이후 4년 만에 중국 기업이 국제 가전 전시장에 재등장하는 자리가 된 것이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우리 기업은 물론 해외 기업과 언론이 중국에 관심을 가진 이유다.
우리나라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와 LG전자는 IFA 2023에서 가전을 넘어 공간과 라이프 스토리를 강조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동안 강조해 온 프리미엄 전략을 통해 기술 격차를 증명했고 새로운 가전 전용 칩셋과 운용체계(OS) 등을 통해 인공지능(AI) 스마트 가전·홈의 미래상을 제시했다. 중국 기업이 빠르게 추격하고 있지만 아직 격차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TV가 대표적이다. 중국기업 하이센스, TCL는 115형 TV 등 초대형 라인업을 계속 늘렸지만 문제는 화질이다. 화면이 커진 만큼 화질 관련 문제가 잘 드러나기 마련인데, 영상의 끊어짐과 뭉개짐 현상을 완벽히 제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LCD 패널 공급의 수직계열화로 외형적으로는 초대형 시장에서 속도를 냈지만 전체 화면에서 영상을 자연스럽고 고르게 표시하는 소프트웨어(SW) 부문은 아직 부족한 상황이다. LCD 상위급 제품인 마이크로LED TV와 OLED TV 역시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주도하는 양상이다.
IFA 2023에서 화제가 된 일체형 세탁건조기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히트펌프 방식으로 건조 성능을 끌어올렸지만, 중국 기업의 세탁건조기는 히트펌프 방식이 아니다. 용량 측면에서도 삼성전자와 LG전자 제품은 세탁 용량 25㎏ 이상 건조기 용량 13㎏ 수준이지만 중국 제품 중에선 20㎏ 이상의 세탁기 전용 제품도 보기 힘들었다.
기능·기술적으로 따라오지 못하는 부분도 보였다. TCL은 LG 워시타워의 형태를 모방한 제품이 있었는데, 세탁기+건조기 조합이 아닌 10㎏과 6㎏의 세탁기 두 개를 쌓아 올린 제품이었다.
하지만 이런 차이만으로는 대한민국 가전이 중국 가전을 압도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개별 기업이 아닌 국가 산업적 측면으로 보면 더욱 그렇다. 중국이 올해 IFA에서 보여준 물량 공세는 압도적이다. 참가기업 수는 중국 1300여개, 한국 160여개로 약 8배 차이가 난다.
그나마 우리나라 기업은 삼성전자, LG전자, 쿠쿠 등을 제외하면 대다수가 협회·기관을 통해 공동관으로 참가했다. 반면 중국 기업은 대부분 단독부스를 꾸렸다. 국내 협회 공동관 관계자는 “올해 IFA에 역대 가장 많은 한국 기업이 참여했지만 대부분 해외 방문객들이 협회·기관명을 회사 이름으로 착각하고 있다”라며 “수많은 중국 기업이 단독 부스를 차려서 홍보하는 모습이 부럽다”라고 말했다.
하이얼, 메이디, 하이센스, TCL 등 다수의 중국 종합가전 제품도 점차 품질에서 구색을 갖춰가고 있다. 빌드인 등 디자인 측면에서는 유럽 기업 제품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제품의 컨셉트는 우리 기업의 것을 채용하는 등 '미투'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삼성 스마트싱스와 LG 씽큐 등 가전 모니터링 관리 통합 플랫폼도 국내 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다. 하이얼의 혼(Hon) 등 중국 기업도 앱 통합 플랫폼 기반 스마트홈을 구축하고 있다.
그나마 우리가 기회로 삼을만한 비교우위는 있다. 중국 가전기업이 내수의 힘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했지만, 제도적 폐쇄성은 글로벌 시장 진출에 장애가 될 수 있다. 이는 가전의 가치 경쟁이 점차 하드웨어(HW)에서 SW로 옮겨가면서 더욱 심해질 것이다.
가치의 차이는 TV OS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중국 기업 역시 자체 TV OS를 갖췄지만 넷플릭스 등 글로벌 콘텐츠를 연동할 수 없다. 중국 법규상 유튜브, 넷플릭스 등의 콘텐츠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폐쇄적인 정책이 가전의 글로벌화에도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이 점에 주목하며 SW와 서비스 분야에서 차별성을 추구했다. 스마트홈의 영역을 에너지와 집안 관리까지 확장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는 가전 성능 업데이트 등 보다 지능화 부문에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 가전과 또 하나의 격차를 만들고 있다.
백선필 LG전자 HE상품기획담당 상무는 “(차별화 없이)패널만으로 만드는 TV는 더 이상 시장에서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숙제”라며 “폼 팩터를 계속 다양화하고 세트를 만들 때 메시지를 담아 차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베를린(독일)=조정형 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