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첨단산업 지키는 우리나라 기업에 응원을

민병주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민병주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글로벌 분업 구조가 급속하게 와해되며 제조업 가치가 주목받고 있다. 핵심 기술을 가진 제조 기업을 자국에 유치해 안전하고 믿음직한 제조업 역량을 갖추는 것이 국가의 명운을 걸 만한 중요 과제가 된 것이다.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미래차 등 첨단 산업 육성 경쟁은 더욱 치열하다.

우리나라는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가 2020년 발표한 세계 제조업 경쟁력 지수 3위 국가다.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27%)은 일본, 독일보다 높다. 너나 할 것 없이 제조업 키우기에 나서는 최근의 상황은 사실상 위기에 가까워 보인다.

그런데 이를 기회로 바꿔줄 만한 존재가 있다. 제조 분야 중견기업이다. 국내 제조 분야 중견기업 중 약 85%(1600여 개사)가 첨단 산업 분야 수출에 관여하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대표적 중견기업 지원 프로그램인 월드클래스 플러스에 선정된 기업 대부분(85%)이 모빌리티, 바이오, 인공지능, 반도체 등 첨단 산업 분야 기업이다. 이들은 글로벌 산업 공급망의 주요 핵심 고리에 포진하면서 국내 소부장 공급망 안정화에 기여하고 있다. 무엇보다 국내 대기업의 1차 협력업체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적 기술력 확보를 위해 자체 연구개발(R&D)에 투자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수출 기여도도 높다. 월드클래스 기업의 평균 수출액은 선정 전에 비해 66.9% 증가한 것으로 집계된다.

반도체 전공정 장비 전문업체 A사는 포토레지스트 스트립 장비의 국산화에 성공해 미국의 경쟁사를 제치고 세계 시장 점유율을 50%까지 늘렸다. 2012년 월드클래스에 선정된 이후 수출액은 10배 늘었다.이차전지 양극재 전문 B기업은 2017년 기준 중소기업이었지만, 하이니켈계 양극소재 양산화에 성공하면서 2020년 중견기업이 됐다. 수출액은 30배나 급증했다.

월드클래스 사업 성과가 이처럼 눈에 띄는 이유는 '선별과 집중'이라는 지원 방식 덕이다. 수출에 대한 열의, R&D 투자 일정 비중 이상 등 성장 잠재력과 계획이 충분히 검증된 중소·중견기업을 엄정 평가해 선정하기 때문에 효과가 크게 나타났다.

현재 우리나라 산업계가 마주한 현안은 글로벌 공급망 안정화와 첨단 산업 육성이다. 이를 해결할 주역은 바로 월드클래스급 중견기업이다. 중견기업 중에는 대기업에 비해 R&D 환경은 열악하지만 우수한 기술을 지닌 사례가 많다. 정부의 전략적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중견기업은 5480개다. 전체 기업의 1.4%에 불과하다. 하지만 전체 산업 수출의 17.7%, 매출의 15.4%, 고용은 13.1%를 차지한다. 중견기업군이 두터워지면 수출 시장 다변화, 국산화로 인한 국부 창출, 글로벌 공급망 내 중요도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월드클래스급 중견기업의 혁신 속도를 높이는 지원이야말로 수출 활력 제고 같은 정책 목표를 현실적으로 가장 빠르게 달성하는 길이다.

이제 나무(단일 기업)만 보지 말고 숲(기업군) 전체를 보는 관점으로 옮겨가야 한다. 든든한 첨단 산업 지킴이인 제조 중견기업을 향해 따뜻한 관심과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야 할 때다.

민병주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bjmin@kia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