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 BTS, 블랙핑크 등 K팝 아티스트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며, 우리나라 음악 산업계는 유례없는 황금기를 맞이하게 됐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콘텐츠를 생산해내는 한국 음악 창작업계 현실과 미래는 밝지 않다. 우리나라의 창작자 보호 수준이 해외 선진국에 비해 부족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국내 시장에서만 경쟁이 이뤄지는 동안에는 이러한 정책적 미비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모두 같은 선에서 출발했고, 같은 대우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외 선진국 창작자들과 경쟁하게 되고, 그들의 작업방식을 쫓는 사례가 늘면서 우리나라 창작자들은 불리한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일례로 최근에는 다수 창작자에 의한 공동 창작 사례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과거에는 한 음악의 작곡가로 등록된 사람이 많아 봐야 4~5명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수십 명인 경우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해외 창작자 또는 제작자들의 한국 시장 진입이 빈번해지면서, 북미 등 해외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던 작업 방식이 한국에서도 자리를 잡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우리나라의 창작업계에 대한 정책적 그리고 경제적 보호와 보상 수준은 그런 해외에 비해 매우 열악하다. 북미는 케이크를 열 조각으로 나눠 먹는 것이지만, 우리나라는 밤 한 톨을 열 명이 나눠 먹어야 하는 구조다. 그리고 이러한 권리마저 매절계약의 성행으로 방송사, 플랫폼 사업자 등에 빼앗기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이제는 로봇과도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우리나라 음악 창작업계가 생존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나라 음악 창작업계의 현주소
우리나라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저작권법이 전면 개정되고 나서야, 국제조약 등이 요구하는 저작재산권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 체계를 갖추게 됐다. 한·미 FTA, 한·EU FTA 등을 체결하며 그 보호의 수준을 조금씩 높여왔다. 하지만 여전히 각종 규제를 통해 저작권 행사를 제한하고 있다. 사적복제보상금제도, 추가보상청구권 등 권리자 보호에 필요한 정책은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다행히 일반 대중의 저작권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좋아졌다. 이제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콘텐츠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화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저작권에 누구보다 민감해야 할 방송사, 플랫폼사 등은 여전히 저작권 처리에 소홀한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수사기관과 법원 역시 이러한 사업자의 저작권 침해에 대해서는 상당히 관대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가령, 우리나라 법원은 최근 판결을 통해 한 달 내내 음악을 사용한 편의점이 지불해야 할 음악 저작권사용료는 200원 정도가 적당하다고 판단했다. 이는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의 1/100 수준이다. 방송사용료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의 음악저작물 사용료 징수규정에 따르면 표면상 적용되는 방송사용료율은 1%대이다. 하지만 온갖 할인과 공제가 이뤄지도록 되어 있어 실제로는 방송사업매출액의 0.5%에도 못 미치는 저작권사용료를 걷을 수 있을 뿐이다. 참고로, 이 역시 5~6% 수준의 요율을 적용하고 있는 프랑스와 같은 선진국에 비하면 한참 낮은 수준이다.
연 억대 저작권사용료 수익을 창출하는 차트 최상위권 음악의 작사, 작곡가들의 이야기가 미디어를 통해 노출되어 음악 창작자들이 많은 수익을 얻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하위 90%, 즉 대부분의 음악 창작자들은 평균 월 5만 원의 수익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음악 창작업계의 생존 방안
영국 하원에서는 2021년 아래와 같은 입장을 담은 보고서를 발간했다.
“단기적으로는 저렴한 가격이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좋은 조건일 수 있으나, 더 많은 수익이 창작자들에게 보장되지 않는다면, 10년 후에는 그들이 사랑하는 일부 음악들은 더 이상 만들어지지 못하게 될 위험이 있다.”
이러한 위험이 초래될 가능성은 저작권에 대한 정책적·경제적 보호와 보상 수준이 영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우리나라가 더 높다. 디지털 스트리밍 환경 발달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점차 국내 저작권사용료 분배 양상이 글로벌 차트 성적을 쫓는 모양새가 만들어지고 있다. 글로벌 차트 기준으로 보자면 여전히 우리나라는 비주류라는 점과 이제는 K팝 상당수 역시 해외 창작자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봤을 때, 국내에서 발생하는 저작권사용료 중 해외 창작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가까운 미래에 급격히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이는 그렇지 않아도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 국내 창작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송캠프 등을 개최하여 적극적으로 국내 창작자들의 해외 활동과 교류를 지원하고 있다. 북미와 북유럽은 자국 IP 확산을 위해 오랜 기간 정부 주도하에 이러한 지원활동을 계속해 왔고, 이는 저작권사용료 수입의 증대와 맞물려 성공적인 결과물을 창출하였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활동 중인 해외 창작자들 중에 북미, 북유럽 출신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민간에서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궁극적으로는 음악이 시장에서 정당한 가치를 평가받을 수 있어야 하고, 저작권의 행사를 가로막는 각종 규제가 완화돼야 한다. 그리고 수사기관과 법원의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개선, 아무리 그 대상이 대기업이라고 할지라도 엄정한 잣대를 들이댈 수 있어야만 우리나라 음악창작업계가 10년 그리고 그 너머를 계획할 수 있다.
〈필자소개〉
추가열 한국음악저작권협회장은 '나 같은 건 없는 건가요' '소풍같은 인생' '행복해요' 등 히트곡을 낸 가수이자 김연자 '밤열차', 금잔디 '오라버니' 작곡을 비롯해 조항조·홍자 등과 200여곡 이상 협업한 싱어송라이터다. 앞서 8년간 음저협 22~23대 이사와 종교위원장직을 역임했다. 추 회장은 종교 음악 저작권 보호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2021년 음저협 회장으로 당선됐다.
추가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