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꼭 있다. 술집과 식당이다. 왜 이렇게 많은가. 산업사회는 끊임없이 기술을 통한 확장 과정을 걷는다. 목표는 성장이다. 성장한 만큼 과실을 공동체가 나눈다. 자본은 기술을 만들고, 기술은 생산성을 높인다. 사람은 노동을 투입해 기술 생산성이 높아지게 돕는다. 효율적인 노동을 위해 전문화와 협업의 과정을 걷는다. 대학 등 교육기관은 공동체가 요구하는 조건의 사람을 공급한다. 공동체가 살아남기 위한 선순환 과정이다.
여기서 철학자 질 들뢰즈 의견을 참고해 보자. 사람은 직장에서 맡은 전문 업무를 협업하며 단순 반복하는 과정에서 피로를 느낀다. 공동체는 업무 피로의 빠른 회복을 위해 회식, 휴가, 취미와 복지 등 기회를 제공한다. 그 결과, 사람은 재생산을 위한 반복적 출근길에 오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짧은 시간에' 고도의 산업화, 정보화를 달성했다. 피로 회복을 위해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보다 동료, 고객과 결속을 다지려고 폭음, 폭식을 거듭하는 회식과 유흥을 통해 피로를 억눌렀다. 술집, 식당이 많은 이유다. 유대감, 충성심으로 직장 생활을 이어가지만 피로는 더욱 쌓이고 가족은 멀어진다. 그럴수록 폭음, 도박, 운동 등 격렬한 수단을 동원한다. 피로가 더 이상 정상적 방법이나 특단의 조치로 해소될 수 없을 때에 '탈진'에 들어서고 직장 복귀가 어려워진다. 몸과 마음이 하얗게 불타버리는 번아웃(burn out)이다.
우리나라 최대 난제인 출산율 감소도 탈진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모른다. 성장이 정체된 사회에서 보람과 보상이 없고 피로해 탈진한다면 누가 그 고통을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겠는가. 차라리 낳지 않고 만다. 탈진의 간접 경험도 무섭다. 젊은 사람은 자발적으로 일자리를 피한다. 공동체 전체의 탈진으로 전염되면 안된다. 막아야 한다.
디지털시대에 사람이 탈진해 떠난 자리를 기술로 메우고 사람을 대신하기 위해 가상인간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가상인간은 광고모델도 되고 기자도 되고 영업사원도 되고 교사도 되고 대통령도 된다. 가상인간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할 수 있다. 온라인 공간에만 있을 수 있고 로봇의 몸을 빌려 실제 공간으로도 나올 수 있다. 다양한 콘텐츠에서 사람을 대신하거나 같이 활동할 수 있고 창작의 품질과 규모를 넓히는 중요한 기회를 만든다. 가상인간은 사람과 같은 번거로움이 없다.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사생활 문제를 일으키거나 마약 등 범죄위험도 없다. 개발, 활용, 관리에 필요한 비용을 상쇄하는 이익이 있다면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과연 그럴까. 사람을 배제하는 기술 발전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디지털 시대엔 국가도 달라진다. 헌법은 영토를 한반도와 이에 딸린 섬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온라인, 모바일, 메타버스 등 새로운 영토가 더해지고 있다. 국민도 한민족 기반의 국적을 가진 사람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에서 일한다면 외국인도 포함하고 온라인 캐릭터, 아바타, 가상인간도 국민의 확장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가상인간은 사람의 디지털 복제다. 새로운 사람의 추가다. 가상인간이 나 또는 누군가의 역할을 대신하거나 나와 누군가를 도와주고 있다.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를 확장하는 개념으로 가상인간을 만들어야 한다.
가상인간은 사람을 표현하는 디지털 수단이다. 사람을 대하듯 존중해야 한다. 인격권, 초상권 침해, 성범죄 등 악행의 우회 수단이 되어선 안된다. 보이스피싱, 음란물, 가짜뉴스 등 가상인간을 악용한 범죄도 막아야 한다. 가상인간을 통한 콘텐츠 창작은 한국문화의 핵심요소다. 가상인간을 산업으로 육성하고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방안을 끊임없이 찾아야 한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혁신과 공존의 신세계 디지털' 저자)